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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6

8 & 1/2

Photo credit : JiSun LEE / 2017.08.08. / Paris

작업과 손님맞이가 휩쓸고 간 8월은 조용하고 또 조용했다.
학생들은 여기저기 다 떠나있지만 수업이 많았다. 취소도 많았고.
이제 한국학생들은 개학하고 유럽학생들은 돌아온다. 나는 간다.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더 사이버 인간이 되어 시차를 넘나들어야 하겠다.
오늘은 온라인 하나, 오프라인 하나하고 출발.

집을 정리한다.
집은 떠나기 전에 반드시 정리해놔야 한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이 더러우면 뭔가 서럽고 힘빠지니까.
얼마 없는 빨래를 하고, 우리집 사용설명서를 인쇄한다. 그래도 이번 단기임대는 믿을만한 사람이라 별로 꽁꽁 안숨겨놔도 된다.

짐을 싼다.
작은캐리어는 이제 기계만 넣으면 꽉찬다.
이번엔 선물도 없이 빈손이다. 그래도 되나 싶은데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뭔 짐이 한가득이다.
이번엔 날씨때문에 공간이동+계절이동.
알람은 7시7분 하나에서 6시6분+여러가지.
도착하는날은 페스티발의 개막식이 있다. 안가도 되는데 가야할것 같다.
8월말은 두가지 일이 한국에서 두가지 일이 프랑스에서 있다.
이럴때가 딱 분신술을 쓰기 좋을때인데 할줄을 모른다. 몸이 두개면 더 피곤하기만 하겠지.
당분간은 더이상 아무 작업도 전시도 안하고 싶었다. 그런데 잠시 다른 일들만 하면서 지내니 어딘가 가렵고 텅빈 느낌.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행복지수가 높은 오랜친구는 나의 행복도 소망해준다.
그녀는 파리를 사랑한다. 나도 물론 파리를 사랑한다.
파리는 아무리 익숙해져도 조금 어렵고, 사사롭게 불편해서 편한 곳이다.
지선이모를 좋아해주는 파리식구들, 시간만큼 신뢰를 쌓아가는 동생이라던지,
사춘기여도 내말은 이쁘게 듣는 학생들과 아들의 수업 말고도 많은걸 나누고 마음을 열어놓은 어머님도.
미치겠을때 나가면 나보고 어쩌라고 그저 낭만적인 산책길이나, 나랑 비슷한 표정으로 혼자 걷고있는 사람들 같은 것들.
왠만해서 변하기 힘든 습관과 답이 정해져 있어도 자꾸하는 질문들.

서울은 다르다. 각오하고 가게되는 곳.
가족들. 그냥 또 연락하게 되는 떠오르는 얼굴들.
인스타 하게끔 만들고 일 만들어 오게 되는 곳.
시끄러우려고 가면서도 조용함을 찾아 돌아다니는 곳.

소음에서 멜로디 찾기 (comme Steve Reich?)
흔적없는 경험 남기기 (comme Tino Sehgal!)
아니면 그냥 살기. 그래도 Chouquette이 해피엔딩이라 다행이었다.
나는 아직 엔딩이 아니지만 아니니까 아니어서. 뭐 어쨌든..
날아봅시다.

유사화효가행.

20170809

Porte au numéro 7.

Photo credit : JiSun LEE / 2017.05.21 / Paris

Août parisien
파리가 8월을 만나면,
조용하다. 아침에도 한낮에도 창밖으로 들리는건 공사소리뿐이다. 공사소리마저 없었으면 이 길에 나 혼자 사나 의심을 갖게 된다.
편지가 오질 않는다. 메일을 보내면 1초만에 답이 오는데 휴가중이라는 자동응답 메세지이다. 
집 관리인이 자기 집으로 떠나있고, 여행사가 여행을 떠나있다. 길거리나 지하철에는 불어보다 영어가 더 많이 들리는 것 같다.
빵집도 떠나서 빵을 사려면 조금 더 떨어져있는 곳으로 걸어가야한다. 냉동마트에서 계산을 하고 나오는 아줌마가 직원에게 힘내라고 인사한다.
올해는 안간다던 한국사람들은 다 한국에 가있다. 실은 어디에들 있는지 잘은 모른다.

Cyber Being
모든 언어수업들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방학이다보니 파리에서 꾸준히 얼굴보던 학생들도 잠시 한국에 가있고, 제네바와 한국의 학생들은 원래가 그렇다.
내가 유럽에 있을 경우에는 시차가 잘 안맞으면 아주이른 새벽이나 아침에 수업을 하게된다. 
내가 한국에 있을 경우에는 아주 늦은 밤이나 다시 아주 이른 새벽이 된다. 
시도 때도 없이 왔다갔다 하고, 언어를 전공으로 하지도 않은 나에게 어떤 학생들은 당장의 중요한 운명을 지도해주기를 부탁한다. 그래서 시차고 뭐고 당연히 함께한다. 온라인수업은 오고가는 시간이 없어서 정확한 시간만큼 수업을 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아무래도 사이버 인간을 대할때 학생들의 책임감이 좀 약해진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생각보다 인터넷환경이 안정적이지가 않다.
내가 한국에 가면 학생 둘이 다시 파리로 온다. 한동안은 우리 계속 화상으로만 수업해야한다. 미안.

New Face
새로운 학생 하나가 있다. 잠시 포트폴리오 준비를 도와주는데 지금으로는 유일하게 얼굴을 직접보고 수업한다. 유일하게 우리집에 와서 수업하는 학생이다. 디종에서의 비밀수업 이후에는 단 한번도 절대로 집에서는 수업을 안했는데 학생 집이 좀 멀다보니 다른 대안이 없었다. 
학생의 세계에서 출발하여 각종 작업얘기를 한다. 보자르를 준비할때, 보자르 다닐때, 내가 작업구상하던 예전과 지금이 교차한다. 

Mother or Woman, our neighbors.
학생들은 없지만 두 아들을 한국에 보내고 적적해하시는 어머님과 저녁을 하기로 했다. 한두번 식사를 하자고 하셨었는데 매번 상황이 발생했었다. 그냥 사람으로, 여자로 보자면 나와는 거의 반대의 성향을 가진 분이신데 결국엔 좋은분이시다. 짧은 시간동안 여러가지 힘든 상황을 겪으셨고 어쩌다보니 내가 옆에 있게 되버렸다. 그렇다고 많은 도움을 준건 아니지만 감사하게도 때때로 오래 보고싶다고 말씀하신다. 
온전히 수업을 하면서 생긴 인연으로 이어지고 또 이어져서 만난사람들. 두 아들도 어머님도 지금의 파리의 이웃들이다. 
파리에는 이웃들이 있다. 과거가 되버린 사람이 많지만 기억이 남아버렸다. 

7, 8,9,10
오늘은 8월9일. 어제는 가장 친한 친구의 생일이었고 올해도 내가 첫번째로 메세지를 보냈다고 했다. 이번엔 하트 이모티콘도 안보냈는데 마음을 받아줬다. 
내일은 10일. 그러니까 7일 뒤면 또 무거운 캐리어와 한판 해야한다. 그리고 날짜상으로 8일 뒤면 가을에서 여름으로 뚝 하고 떨어진다. 
올해 8월은 가을과도 같은 날씨이다. 흐린 하늘과 가끔 비추는 햇빛과 쌀쌀한 바람과 툭하면 흩날리는 빗방울. 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날씨이다. 이 날씨 좋아할 만한 사람들 몇몇 더있는데 함께하지 못해 아쉽군.

Deutsch
독일어 공부책을 하나 샀다. 더불어 새 노트도 하나 샀다. 아주 오랜만이다. 당장에 공부를 시작할수 있을것만 같았는데 그러지는 못했다. 또 책욕심이 나서 시나리오 공부책이랑 시집도 들었다 놨다 했는데, 아직 시작도 못한 책들이 떠올라서 그것들은 표지만 찍어왔다. 
하루일과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은 리스트가 있다. 아주 성실하게 리스트에 있는것들을 하나씩 순서대로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매일 벅찬 행복과 뿌듯한 피곤함에 잠이 들것 같다. 적어도 3개월은 그렇게 해보고 싶다.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Home Atelier
지금 파리의 집은 뭘 하든 가장 효율적으로 빠르게 만들어 낼수가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가장 처지고 흐트러지는 곳이기도 하다. 아침을 맞이하자 마자 상쾌한 작업장이 되기도 하지만 아주 쉽게 숨막히는 감옥같은 곳으로 변하기도 한다.
내년이면 이사를 계획한다. 원래는 체류증을 내년 하반기로 잡고 그 이후에나 뭔가 움직이려고 했는데 그 걸림돌이 훅 사라졌으니 그냥 내년 하반기에 이사를 해야할것 같다. 파리의 집과 계양의 집. 둘다 정리를 하고, 한 곳, 새로운 곳으로 가는것을 꿈꾼다. 
지금 머릿속으로는 여러가지 옵션이 있다. 현실이 얼만큼 허용하는가는 가봐야 알겠다.

Circle
The circle of life. 라이온킹의 마지막 노래 가사.
The circle 한달전쯤인가 봤던 정말 싫었던 영화.
Circuler 내 삶을 한동안 차지했고 이제 곧 시작이 다가오는 일.
동그란 이야기들, 네모난 얼굴들, 구불거리는 시간들.

Trace bronzée
나름대로 여름이면 조금 타고 겨울이면 다시 돌아온다. 물론 하얗다, 창백하다, 핏기가 없다는 말은 익숙하다. 근데 요즘 한국 여자들을 보면 나보다 더 하얗고 뽀얀 사람들이 많은것 같은데도 그렇다. 같이 사진을 찍어도 비슷한것 같은데 아무래도 표정이나 몸짓의 문제인가.
아무튼 이번 여름에도 몸에 햇빛의 자국이 남았다. 하나는 오른쪽 새끼손가락에 반지부분만 하얗게 남은 자국. 다른 하나는 나와 많은 걸음을 걸어준 그 신발의 경계만큼만 새까맣게 탄 발등 위의 자국.

Chaussures
신발은 편하고 심플한것을 좋아한다. 편한것이 우선이지만 디자인도 내 눈에 괜찮은 심플함이어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의 눈에는 할머니 신발로 보이는것 같다. 다른 계절에 신는건 젊은데 특히 여름에 신는것이 좀 그렇다. 
그냥 매일 신고, 어디가 찢어지거나 닳아버리면 비슷한 새신을 사서 갈아신은 후 옛신을 버리고 온다. 그래도 내 전시 오프닝이라던지 특정한 공연을 보러가거나 결혼식 같은것들을 갈 때에는 구두를 신는다. 10년쯤 전에 산 5cm정도 굽을 가진 구두인데 내가 가진것들중 가장 굽의 존재가 있다. 그 신발을 신으면 딱딱거린다. 그것도 이제는 편할만큼 편해진 신발이다. 

Pas à Pas
자꾸 잃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잊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물건이나 소모품은 순간적으로 상실감만 지나가면 상실을 망각하고 산다. 그런데 마음이나 생각은 잃기도 잊기도 싫은데 나도 모르게 증발하듯이 날아가버린다.

그래서 오늘도 주문을 외운다. 유사화효가행.

20170726

Sur le vent. (바람에 관하여)

Photo credit : JiSun LEE / 2017.06.06 / London
Sur le vent.

Il brille. Le soleil lave le visage dans sa lumière chaude.
Il pleut. Les souvenirs remontent avec des paroles monotones des gouttes.
Il scintille. Les étoiles se chatouillent dans le coeur assombri.
Il neige. Les flocons de glace silencieux posent légèrement sur le nez.
Et il souffle. Une fine barbe de vent passe par la peau.

Une photographie qui a gelé le paysage me regarde.
Je roule les yeux et scrute tous les coins de l’image.
Une voix s’échappe du visage figé et réveille le parfum oublié.

Quand une feuille sans parole est touchée par le vent, elle murmure à d’autres qui transmettent leurs chansons.
Les mots sonnent avec les vagues du vent de haut en bas.
La feuille dansant joyeusement lâche la main qui tenait la branche.
Elle monte avec le vent et se met en scène du ciel bleu.

La sueur chaude de l’été bouillonnant accueille le petit air soufflant doucement, alors que la terre sèche de l’hiver dur craint la brise glaciale.

Au milieu de l’océan ouvert immense, un radeau carré ne sait pas par où naviguer.
Un morceau de tissu blanc à peine pendu dessus entend les murmures du vent et prend sa direction.

Le ventilateur, qui tourne la tête et les ailes sans arrêt, ne peut voler mais plie sa tête.
Enraciné profondément dans son terrain de vie, l’arbre fait des amis qui arrivent le long du vent.
Le dernier pétale de la fleur répand son parfum jusqu’à la dernière minute.
La semence volée à son lieu de naissance grandit et fleurit pour devenir un arbre.
Et le dernier chemin de la feuille tombant est entouré du vent.

Le vent souffle.
Les cheveux qui couvraient le visage s’ouvrent avec son toucher doux.
Puis je regarde vers le haut et contemple le vent qui s’est déjà passé.

Sans aucune trace, le vent ne laisse que les souvenirs de sa main calme.


Photo credit : JiSun LEE / 2014.11.12 / Paris
바람에 관하여.

해가 비춘다. 따스로운 햇빛에 얼굴을 씻는다. 
비가 내린다. 단조로운 노랫말에 추억이 떠오른다.
별이 반짝인다. 깜깜하던 마음속을 폭죽놀이가 간지럽힌다.
눈이 쌓인다. 소리없이 포근한 얼음송이가 콧등을 적신다. 
그리고 바람이 분다. 살랑거리는 수염이 살결을 스쳐 지나간다.

풍경을 얼려버린 사진은 움직임 없이 나를 바라본다. 
이리저리 눈알을 굴려가며 사진의 구석구석을 훑는다. 
굳어있던 표정에선 목소리가 들려오고 잊혀졌던 향기가 머리맡에서 풍겨온다.

말이없던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면 하나 둘 속삭이며 노랫말을 전한다. 
노랫말은 위로 또 아래로 바람의 파도와 함께 울려퍼진다. 
신나게 몸을 흔들던 풀잎은 곧 가지를 붙잡던 손을 놓는다. 
바람을 타고 올라 파란하늘을 무대삼는다.

들끓는 여름의 뜨거운 땀방울은 잔잔한 바람에도 반가운 위로를 받지만, 냉혹한 겨울의 속을 드러낸 땅은 매서운 바람에 얼어 붙는다. 

광활하게 열려있는 바다 위 한가운데 네모난 뱃조각은 갈길을 모른다. 
그 위에 간신히 걸려있는 하얀 천조각은 바람의 속삭임을 듣고 방향을 잡는다. 

고개를 휘저어가며 열심히 날개를 돌리는 선풍기는 몸을 띄우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뿌리가 깊어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는 바람을 따라 찾아오는 친구를 사귄다. 
시간이 얼마 남지않은 꽃송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향기를 뿌린다. 
바람에 날아와 피어날 자리를 잡은 새싹은 꽃이되고 나무가 되어 자라난다. 
그리고 떨어지는 잎새의 마지막 길도 바람이 포근하게 감싸준다.

바람이 불어온다. 
부드러운 손길에 덮혀있던 머리카락이 열린다. 
기운없이 숙여있던 고개를 들고 지나간 바람을 바라본다. 
흔적이 없는 바람은 그 잔잔한 손길의 기억만을 남긴다.


Photo credit : JiSun LEE / 2014.11.12 / Paris

About the wind.

It shines. The sun washes the face in its warm light.
It rains. Memories rise with monotonous lyrics of the drops.
It twinkles. Stars tickle in the dark mind.
It snows. Soundless ice flakes lightly pose on the nose.
And it blows. A chilly beard of wind passes by the skin.

A photography which has frozen the landscape stares at me.
I roll around the eyes and scan every corner of the picture.
A voice comes out of the clotted face and awakens the forgotten fragrance.

When a wordless leaf is touched by the wind, it whispers to others which convey their lyrics.
The words ring with the waves of the wind up and down.
The leaf waving joyfully releases the hand holding the branch.
It goes up with the wind and set the stage for the blue sky.

The hot sweat of the boiling summer welcomes even a gently blowing air, but the dry land of the harsh winter fears the freezing breeze.

In the middle of the vast open ocean, a square raft doesn’t know where to sail.
A piece of white cloth barely hanging on it hears the whispers of the wind and gets its direction.

The fan, which wiggles its head and turns its wings, cannot fly but bends its head.
Deeply rooted in its lifelong ground, the tree makes friends, which come along the wind.
The last petal of the flower spreads out its perfume until the last minute.
The seed flown to its birth place grows up and blooms to become a tree.
And the last path of the falling leaf is covered with the wind.

The wind blows.
The hair covering the face opens with its soft touch.
Then I look up and gaze at the wind that has passed over.
Without a trace, the wind only leaves the memories of the calm hand.

20170622

27>28

Photo Credit : JiSun LEE / 2017.06.16 / Plan de l'Aiguille (photographed by YSL)

지금 떠올려보는 28가지 :

  1.  « Der Augenblick ist mein. » (작년, 내 엽서에 답해준 U의 선물 표지 : The moment is mine.)
  2. 어젯밤에 렌더링을 걸어놓은 2분만큼의 비디오가 밤새 20프로밖에 안되있다. 포토샵 파일들이 너무 무거운가보다. 새비디오 Alive 작업중.
  3. 파리에 폭염이 왔다. 오늘까지 이어지고 내일부터 조금 풀린다고 한다. 하루종일 volet를 내려놔서 집이 깜깜하다. 내 땀구멍도 37도에는 열린다. 미니 선풍기를 구해봐야겠다.
  4. « (…) That is what the people were made from - first the gentle-man who was called Boat. They formed themselves - they simply became. The angle, who had also become a human, only needed to watch. They made themselves in his image. » (Walter Benjamin, Funny Story from When There Were Not Yet Any People)
  5. « The one necessary thing. A person must have one or the other : either a disposition which is easygoing by nature, or else a disposition eased by art and knowledge. » (Friedrich Nietzsche, Human, All Too Human) 확실히 전자는 아닌듯.
  6. 오늘은 불어수업 하나. 제네바 새로운 인연 JS.
  7. 더불어 오늘은 공연도 하나본다. DIVA w BR.
  8. 아침을 맞아준 인삿말들과 하트들과 뽀뽀들. 감사.
  9. « Friend. Shared joy, not compassion, makes a friend. » (Friedrich Nietzsche, Human, All Too Human) 친구가 외로울때 읽으라고 시집을 놓고갔다. 고마운것.
  10. aporie : subst. fém. (grec ‘aporia’ : absence de passage, difficulté, embarra) Une difficulté à résoudre un problème. Contradiction insoluble dans un raisonnement.
  11. la mimèsis : (grec ancien μίμησις, mímêsis (« imitation »), employé par Aristote dans sa Poétique, La nature exacte de la mimèsis a souvent été l’objet de controverses. Paul Ricoeur propose de traduire le terme par ‘fiction’.) : Reproduire l’apparence du réel. Exprimer la dynamique, la relation avec une réalité vivante. > rapport de l’art au réel
  12. 2019년에 많은 정리와 충전을 할 꿈을 꾸는데 그 정리형태 중에 하나는 책이다. 3가지 모음을 각각 엮으면 좋겠다. 더불어 작품 카탈로그는 30-50부정도 제작할 예정.
  13. 50점의 비디오들도 대대적인 정리와 더불어 모든 비디오를 엮은 비디오를 만들 예정이다.
  14. 그리고 집도 정리.
  15. 그래서 앞으로 1년간은 맡은일들 잘 마무리 하기가 목표.
  16. 머리를 1cm로 자르겠다는 말은 농담 반 진담 반이니까 나도 그때 가봐야 알것같다. 어쨌든 올해 오렌지빛 비슷한 염색은 해봤다. 지금은 조명에 따라 붉은정도가 꽤 다양하게 보인다. 
  17. « (…) L’amitié est indispensable à l’homme pour le bon fonctionnement de sa mémoire. Se souvenir de son passé, le porter toujours avec soi, c’est peut-être la condition nécessaire pour conserver, comme on dit, l’intégrité de son moi. Afin que le moi ne rétrécisse pas, afin qu’il garde son volume, il faut arrose les souvenirs comme des fleurs en pot et cet arrosage exige un contact régulier avec des témoins du passé, c’est-à-dire avec des amis. Il sont notre miroir. » (Milan Kundera, L’identité) 아무반응 없다가 때때로 소식을 잘 보고있다고 페이스북 메세지가 올때가 있다. 얼마전 시간맞아서 봤던 영화 Drôles d’Oiseaux에서처럼 사라진채로 사는것. 나는 아마 내 기억의 témoin들에게 계속 나의 존재를 호소하는 것 같다.
  18. 혼자 잘먹고 잘사는것 처럼 보여도 함께를 갈구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혼자 그냥 냅둬야 뭐든 더 잘한다.
  19. « (…) Qu’aujourd’hui cette tristesse, tout en la reconnaissant comme étant celle que j’ai toujours eue, je pourrais presque lui donner mon nom tellement elle me ressemble. » (Marguerite Duras, L’Amant)
  20. 책을 읽을때는 좋은 구절을 밑줄 치면서 읽기 때문에 제대로 읽으려면 빌리기보단 사야한다. 당시에 오해해서 밑줄을 칠수도 있고 그 이외의 주옥같은 구절을 놓치기도 하겠지만 그때 좋았던 구절을 또 읽고, 어디에 적어보고, 외워보고, 작품으로 바꿔보고 하는게 좋다. 너무 오래 책을 못읽었다. 올 가을을 기대중.
  21. 손님맞이 한바탕 직전에 봤던 영화 Marie-Francine의 주된 배경중 하나가 파리 16구. 게다가 남녀주인공이 우리집앞을 대화하면서 걸어간다. 나중에 이사가고 우리집이 보고싶으면 이 영화 보면 좋을듯.
  22. « (…) -추신 / 내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음 편지가 도착할 때까지 여러모로 생각해 보세요. »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감는새) 3학년 개인작업을 위해서 한참 많은것을 읽어볼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 잊고 있었는데 그때 우물에 대한 작업을 되게 하고싶었었다. 이런저런 스케치도 많이 해놨었는데 아직도 못해봤다.
  23. « “Cahier privé” : privé de quoi? (…) Une année efface l’autre, un jour efface le précédent! Maintenant c’est plus simple : quand je suis devant un de mes innombrables creux de mémoire (je préfère creux à trous), j’ouvre un de mes cahiers, j’ai la réponse. (…) Peut-être quand même à m’assurer qu’il y a une certaine continuité dans ma vie, une fragile permanence du “je” à travers les années. » (Jean-Bertrand Pontalis, En marge des jours) 요즘같아선 나도 내가 하는일의 어디까지가 지극히 개인적인거고 어디까지가 상당히 공적인건지 모르겠다. 어떤것이 어떻게 작업에 쓰일지 모르고 어떤 작업이 내 계획과 삶에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 계속 적고, 기록을 남기고, 만들어 내는중.
  24. 그래도 하염없이 만들기 보다는 정리와 충전이 필요하다. 쓰레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면 끝.
  25. « - Vous êtes-vous déjà demandé ce qu’il était advenu de l’individu qui vous a donné votre nom? » (Georges Perec, W ou le souvenir d’enfance) 올해작업들이 마무리되면 이 책의 형태같은 비디오를 만들까 한다. 이미 비슷하게 시도해보긴 했지만 훨씬 더 자동기법을 끌어내보고 싶다. 이 질문에 있어서는 내 이름은 지(智, 슬기로움, sagesse) 선(善, 착함, gentillesse)이다. 쉽고 흔한 이름이지만 발음이나 의미가 좋아서 나도 좋은 이름이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하는데 말이다.
  26. « 잠을 방해하는 큰 원인은 욕심이다. » (피천득, 인연) 고등학교때 한 친구가 선물해준 책. 지금 열어보니 군데군데 당시 일기도 적어놨다. 한참 유학을 준비하던 시기. 그친구는 영화계에 들어간 것은 알고 이전에 한번 봤고, 지금은 연락이 끊겼다.
  27. Ain’t Got No (I Got Life) - Nina Simone 지난달에 봤던 영화에 나온 음악. 듣고 반해서 찾아서 다시들었다. 올해는 버리기. 계속 버리기 연습. 그래놓고 집에 짐이 많아졌다. 다 버리자.
  28. 유사화효가행. 몇몇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냥 별거아닌 내 인생의 전반적인 목표 겸 요즘은 주문같은 것. 문신을 하나 할 기회가 오면 이걸로 할꺼다. 초성자음만 따서.

20170214

Post Script of La Touche, Une Tache.

Photo credit : JiSun LEE / 2017.02.14 / Paris

Post Script of La Touche, Une Tache.

시작
준비하던 그룹전이 담당자의 히스테리로 순간 취소되고, 갑자기 또 다른 그룹전을 하게됐다.
그 전시의 오프닝 중에 한쪽 귀를 막고 한 통화로 이번 개인전이 결정됐다.
많이 급했던 일정이라 당연히 불가능 할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제네바와 한국일정 딱 그 사이로 테트리스 끼워맞추듯 날짜가 맞았다.
기왕이면 새로 이사한 반짝이는 문화원에서 전시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갑작스럽게 취소했을 누군가의 대타인줄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도 좋은 일이었다. 올해에는 빠리에서 개인전을 한번 하고 싶었는데 아직은 전혀 방법도 장소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다가 아예 올해를 이 일로 시작했다. 

준비
작가님 혹은 선생님이라고 까지 불러주시는 문화원 직원분들과, 나의 부족한 눈을 채워주신 SA큐레이터님, AD의 깔끔한 비평글, 내가 직접 디자인도 인쇄도 안한 초대장과 카탈로그, 파리지성 보도자료까지.
가장 중요한 작품들은 다행이 아직 소개해보지 못한 작업들이 이것저것 많았지만 모아보려 하니 또 자잘해 보이기만 했다. 큰작업이 거의 없는 나에게는 시리즈처럼 고집부리고 해온 작업들이 많은 부분을 채워줬다. 벽에 걸고 보니 더욱더 작은 작품들이지만 지금 나에게 최선의 것들이였던것 같다. 다만 올해부터는 A4에서 A3로 키웠다. 수는 많이 줄겠지만.

설치와 철수
졸업하고 3년반동안 30번정도의 크고 작은 전시를 했다. 20번정도는 혼자 낑낑대고 설치를 한것 같고, 3번정도는 한국에서 오빠와 아빠가 날개를 달아줬었고, 5번정도는 아예 누군가가 대신 설치를 해줬다. 이번에는 협회를 통해 인연을 쌓게된 오빠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YH오빠, HK오빠, SS오빠 모두들 무엇보다 듬직했던 날개들.

인연
문화원에는 협회일로 이래저래 많이 다녔지만 워낙 눈에 띄는 인상이 아니라 직원분들과 아는듯 모르는듯한 사이였다. 이제는 내가 누군지는 아신다.
큐레이터님이 소개해주신 비평가 AD는 알고보니 내 석사지도교수와도 내 전 갤러리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이 세계는 알수록 모르는 사람이 더 많고, 멀리 다닐수록 좁다.
오프닝을 하기 전 다녀간 프랑스 여자의 이메일. 나의 존재가 고맙다는 메세지는 지금 생각해도 약간 안 믿긴다.
방명록은 언제나 그렇듯 편지같이 고이 보관. 하트하트하다.
문화원에 밥먹듯이 드나드는 흑인아저씨는 자신이 곧 출간할 시집에 삽화를 그려달라고 했다. 최종 첨삭후 텍스트를 보내준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 말도 안되는 제안일지 아주 재미있는 작업이 될지는 좀더 두고봐야겠다.

오프닝
오프닝은 늘 참 그렇다. 기쁜날이면서 허무하고 피곤하고 서운하기도 하면서 내가 주인공같이 느껴지는 날이기도 하다. 파리에 남은 사람이 없다고 점점 더 느껴가는데 그래도 동료라서, 궁금해서, 예의상, 좋아서, 이유가 어땠든 찾아와준 사람들이 너무 고맙다. 작가라고 사진도 찍어가고 사인도 받아가고, 같이 일했던 갤러리라고 여기저기에 칭찬도 해주고, 손녀딸 같을 교수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주고. 생각보다 별로 쉬운일이 아니다. 엄청 감사한일이다. 집에와서 맥주한잔하면서 현실로 돌아오기.

방명록
작년 이맘때 전시때 사용하려고 준비했던 작은 메모지. 결국 그때는 방명록이란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최소한의 방문만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개인전에서는 갤러리에서 준비한 노트가 따로 있었다. 세번째에서야 비로소 작고 초라한 메모지가 방명록으로 쓰였다. 답이 없을 편지를 쓰지만 전시를 핑계삼아 사람들을 맞이하고 편지를 받는것 같아 좋다. 게다가 이번 전시의 마지막 방명록은 나의 가장 오랜 학생. 파리생활만큼 오랫동안 이어지는 인연에서 학교가 바쁘다는 이유로 한번도 들르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전시도 오고 마지막 페이지도 장식해줬다. 사람과 사람은 익어가는것 같다. 

내가 만지다, 나를 만지다.
작년 비슷한 시기에는 한국에서 개인전을 하면서 한 해를 시작했다. 그때 컬쳐엠과 비디오 인터뷰를 하면서 전시도 소개하고 나도 소개를 했다. 곧 파리로 돌아와서 갑작스럽게 YTN 보도자료에 등장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딱 1년이 지나고 아주 비슷한 일이 파리에서 파리지성 덕분에 지나갔다. 예상과 계획에 없던 것들이 지나간다. 오늘을 살면 내일이 준비된다. 점점 더 그렇다.

손과 나무
작년, 여러가지로 허하고 외로움이 동기가 되서 따듯한 손을 계속 그려왔다. 선물로도 꽤 나눠줬다. 내 손을 차갑기 때문에 그림은 따듯하고 싶다. 올해에는 많은 나무를 그리려고 한다. 손과 나무는 많이 닮았다. 많은 나무를 심어서 또 얼만큼이 모이면 숲과 같은 전시를 해야겠다. 


유사화효가행.

Photo credit : JiSun LEE / 2017.02.14 / Paris

20170212

Sur l'aller-retour. (왕복에 대하여.)

Photo credit : JiSun LEE / 2017.01.01 / Train to Paris

Sur l’aller-retour. (Texte écrit lors du trajet Séoul>Paris en octobre 2016, traduit et publié lors du trajet Paris>Séoul en février 2017)

Alors que le temps de retour se raccourcit, le changement du monde s’accélère. La même coiffure ainsi que les mêmes tenues, je retourne au monde qui m’a laissé une parole qui n’a jamais été oubliée. Pourtant, lui, il a changé, avec une apparence nouvelle, les mots effacés, les cheveux coupés. À Séoul, ville fourrée de tant de choses, il se crée toujours des situations qui sont à peine ou jamais compréhensibles, partout et simultanément. Intégrer dans une société puis la changer, composer une famille et attendre un bébé, avoir un amoureux ou se séparer. Les événements plus ou moins importants surgissent, passent et s’effacent. Les marches des gens se précipitent pour suivre la vitesse de la ville. Les transports aussi balancent le long de leur marche.

Que la tête de l’avion s’oriente vers la Corée ou la France, le battement du coeur change de rythme qui s’adapte aux heures du lieu différent. Au moment du retour, les préoccupations qui pesaient autant, la musique qui faisait pleurer, le texte qui donnait du sourire, ont presque évaporé. Seules les nouvelles passions restent inscrites dans le cerveau. Dès l’arrivée à l’aéroport de Paris, j’arrive d’un coup à monter les escaliers avec les bagages qui étaient impossibles de lever d’un centimètre à Séoul. Les exclamations et les pensées se formulent très naturellement en français. ‘Me voilà chez moi’ ne se dit plus à Dijon comme il y a quelques années, mais plutôt à la première respiration à Paris, ou bien dans quelques autres endroits qui me reposent.

Une fois rentrée à la maison après un certain trajet depuis l’aéroport, il se trouve avant tout les traces non familières de celui qui y a habité temporairement pendant mon absence. Coin par coin, je nettoie les taches, range le désordre non intentionnel pour retrouver chez moi. Certains objets se remettent facilement à leur place d’avant, d’autres attendent quelques jours que mes habitudes reviennent. Deux ou trois nuits passées, presque tout reprend sa position la plus confortable.

Le matin si sombre, les camions de vide-ordure ou de nettoyage, des salutations mélangées à des bruits familiers. Je sors la “liste des affaires dès le retour”, remplie précédemment contre la peur d’oubli, et commence à cocher celle qui semble la plus urgente. Successivement, je me réhabitue au quotidien en donnant des cours de langue réservés comme avant, en me rendant aux rendez-vous pris à l’avance, et en réarrangeant tout ce que je peux. Rien que familier, à un moment inattendu dans le quotidien, tout apparaît étranger, nostalgique, confondu.

L’atmosphère de l’aéroport me stimule encore et le premier air me fait sentir le sol sur lequel je me dresse. Paris ne ressemble plus à la ville que j’avais visitée lors de l’enfance. Tandis que chaque élément se distingue d’une ville à l’autre, Paris et Séoul sont si stéréoscopiques à mes yeux. La première fois s’éloigne au cours du temps. Néanmoins, chaque aller et retour marquent une autre première fois pour toute action : premier matin, premier repas, premier café, etc. après le retour. C’est comme si tout est pour la dernière fois avant le départ.

Pendant le trajet en train ou en avion, dont la durée est bien déterminée, il y a tant d’affaires qui remplissent le temps. Le livre acheté à la gare invite à se plonger dans un univers à part, le papier vierge devient un dessin, le nouvel album de musique ouvre sa porte, une langue se traduit dans une autre, etc. La répétition de l’aller-retour ou bien du retour-aller ne se fait pas seulement aux voyages, mais dans la vie de tous. À une durée close comme deux mois, trois semaines, ou dix jours, tout peut se passer, changer, naître ou disparaître. 

Enfin, le monde est différent parce qu’on est parti, parce qu’on est retourné, reparti, revenu. L’aller fait voir un autre visage de la journée après le retour, et le retour fait entendre la voix de la nuit avant l’aller. 

Photo credit : JiSun LEE / 2016.10.06 / Bus to Seoul

왕복에 관하여. (2016년 10월 서울>파리 여정에 쓰고, 2017년 2월 파리>서울 여정에 번역 및 게재함.)

다시 돌아가는 시간은 더 짧아지는데 그 곳은 자꾸 더 변해있다. 머리도 옷차림도 그대로 지난약속을 마음에 되새기고 그곳에 도착한다. 그곳은 어느새 말끔하게 바껴있고, 지난 말과 약속은 깔끔하게 지워져 있다. 가득하고 빠른 서울에서는 이해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여기 저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지워진다. 직장에 들어가거나 회사를 바꾸는 일. 가정이 생기고 아이가 태어나는 일. 애인이 생기거나 헤어지는 일. 인생에 큰 일들이 넘치게 지나가고, 도시의 빠른 리듬을 따라가느라 사람들의 발걸음도 버스도 지하철도 꿀렁거린다. 

비행기의 머리가 한국을 향할 때와 프랑스를 향할 때, 도시의 리듬에 맞춰 달리던 시간에 따라 심장박동도 달라진다. 갈 때의 고민이 뭐였는지 어떤 음악에 울고 웃었는지도 잘 떠오르지 않고 다시 새로운 다짐들로만 가득하다. 두손으로도 낑낑대고 들지 못하던 캐리어는 파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양손 가득히 번쩍번쩍 들게되고, 감탄문이나 중얼거림은 자연스레 불어로 바뀐다. 몇년전 디종 기차역에서 너나할것 없이 내뱉던 ‘왔구나’라는 말는 이제 새로운 장소에서 더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공항에서 부터 그리 짧지 않은 길을 지나 집에 도착하면 빌려쓰고간 사람의 흔적이 곳곳에 뭍어있음을 확인한다. 다시 한 구석씩 정리하고 닦다보면 어떤것들은 당연히 그 자리, 그 모양이 되고, 어떤것들은 원래가 어디인지 잘 떠오르질 않아 적당한 자리에 놓인다. 몇일이 지나면 편리와 익숙에 의해 어느샌가 그때 그 자리를 되찾는다. 비로소 우리집이 돌아온다.

부쩍 깜깜한 아침, 아침이면 지나가던 청소차와 쓰레기 수거차. 소음에 섞인 레파토리같은 인삿말들. 출발할 때부터 하나씩 메모해 놓았던 ‘돌아오면 챙겨야할 리스트’를 바라보고, 그 중 빨간불이 들어오는 것부터 처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당연한 수업들과 약속된 바깥일을 보고, 정리에 또 다른 정리를 하며 하루 이틀을 보낸다. 적응이라는게 따로 필요없는 일상 안에서, 문득, 모든게 그립고 모든게 낯설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아직도 조금은 설레이는 공항의 분위기를 지나 밖을 나서서 처음 마시는 공기는 내가 어느곳에 발을 딛고 있는지 온몸에 전파를 보낸다. 아주 어릴적에 방문해서 첫인상이 잘 기억나지 않는 파리는, 내가 태어났기에 그 순간을 더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서울과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기도, 모든게 똑같기도 하다. 처음이라는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염없이 멀어진다. 그런데 떠났다가 돌아옴을 반복할 때마다 첫 식사, 첫날 밤, 첫 커피 같이 다시 하나하나를 처음으로 점찍는다. 떠나기 전 행동 하나하나가 ‘이번 마지막’이듯이.

출발과 도착시간이 명확한 기차나 비행기에서의 몇시간은 다양한 일들로 채워진다. 역에서 사서 주머니에 넣고 탄 책으로 잠시 다른 세상에 빠지기도 하고, 비어있던 종이가 그림이 되기도 하고, 처음 듣는 새 앨범을 몇번정도 감상할 수도 있고,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로 뒤바뀌기도 한다. 여행때마다 반복되는 오고 감 혹은 가고 옴은 실은 인생이라는 길고 자잘한 여행에서도 만들어진다. 2달, 3주, 열흘과 같이 정해져있는 하나의 기간동안 그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고, 그 어떤 마음의 변화를 겪기도 하고, 특정한 몸의 변화를 겪기도 한다. 

세상은 돌아갔기 때문에, 혹은 돌아왔기 때문에 달라진다. 떠났기에 돌아온 후에 의식하지 못했던 낮의 표정을 보게하고, 돌아왔기에 떠나기 전 귀기울이지 않았던 밤의 목소리를 듣게한다. 

20161127

La porte au numéro 4.

Photo credit : JiSun LEE / 2016.11.11 / Paris

이사
9년의 이 생활동안 한국의 부모님 집도 프랑스의 나의 집도 자주 이사를 하게됐다.

태어난곳에서 오래도록 살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쯤 휩쓸리는 한국의 여러가지 파도와 함께 그저 한곳에 머물것 같던 우리가족도 상황에 쫓기거나 조금이나마 더 나은 조건이라고 여겨지는 곳으로 옮겨다니기 시작했다. 그저 당연한 번호로 여겨지던 103번지. 5355라는 집번호 뒷자리. 동네 길을 넓힌다고 집을 두부잘라내듯이 잘라내서 새로 개조가 되었을 때나 2층에 이모네나 가장 친한 친구네가 들어왔을 때, 주변 집들이 제각기 다른 모양의 빌라로 바뀔 때. 그럴때도 난 잘 몰랐고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고 지나갔다. 그리고 내 인생에 처음으로 이사. 이사를 옮겨놓고 아빠차를 타고 새집으로 가던 때의 분위기와 느낌이 그대로 기억난다. 오르막길을 따라 계속해서 운전했고, 아직 이삿짐이 정리되지 않은 어수선한 집에서 내 방이라는 곳에 잠시 들어가서의 그 느낌은 정말 싫었다. 괜히 짜증이 났고 울고 싶었고 정이 안갔다. 그 이후로 우리집은 계속해서 이사를 했다. 유학을 떠난 후에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한국에 2년에 한번정도 갔기 때문에 한국에 갈때마다 새로운 집으로 가게됐다. 서울의 동쪽 끝, 서쪽 끝. 도착한 날은 아빠가 동네를 조금 설명해주고 서울가는 교통편을 알려주는게 당연한 첫번째 일과였다. 집에 가도 집이 아니였고, 광화문이나 나오면 한국에 왔구나 싶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도 이사를 많이 했다. 비로소 지금의 집에서는 여러해를 보내고 있다.

Grenoble에서 홈스테이를 하다가 집에 공사를 하는 바람에 그 엄마네로 첫번째 이사. 짐도 별로 없었고 집주인의 차로 옮겨서 쉬웠다. 그저 잘 지낼 줄 알았지만 나의 조용함을 답답해하던 조금 히스테릭한 집주인 엄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두번째 이사. 비오는 날 오빠의 까만 후드티를 입고 버스를 타고 여러번 왕복해가면서 이사했다. 처음 혼자 이사해봤고 처음 진정으로 처량해봤는데 동시에 이집을 나와야만 한다는 의지가 너무 강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혼자살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몇달간 교환학생을 가는 한 프랑스 여학생의 집에 sous-location. 요리도 하고, 전 집주인이 허락하지 않아서 못했던 친구 초대도 하고, 샤워도 내 마음대로 하고, 집에 인터넷도 되고.. 좋았다. 

그리고 Grenoble에서의 어학수업을 마치고 여느때처럼 매달 마지막날 수업 후 선생님과 반친구들이 모여 피크닉. 그날 돌아와서 조금더 깊은 정을 나눴던 중국친구 W가 떠나기 전 청소를 도와줬다. 노인과 같이 살던 친구라 참 살림을 잘했다. 지금은 노인의 죽음 후에 여러가지 우울증세가 심해져서 중국으로 돌아간지 벌써 5-6년 되었을 친구. 연락은 끊겼다. 다음날 아침 이불빨래까지 해놓고 새 보금자리 Dijon으로 세번째 이사. 그 전에 인터넷 직거래 사이트에서 집을 보고 당일 기차로 방문을 하고 계약도 했던 자그마한 집. SNCF의 짐 서비스로 큰 캐리어 두개를 보내고, 나는 당일에 캐리어 두개와, 큰 짐 하나와, 매는 가방 하나, 이젤, 아트백 뭐 그런것들을 한꺼번에 지고 기차를 탔다. 지금 생각해도 Dijon 기차역에서 그때 그 집까지 빠르면 15분이면 가는 길을 짐이 너무 무거워서 1시간 반에 걸쳐 갔다. 더운 여름이였다.

처음으로 Chez 누구가 아닌 내 이름이 붙은 집. 작지만 창가로 보이는 도시도 예쁘고 건물의 입구도 꽤 넓찍했다. 그런데 1년을 살다보니 1학년 수업중에 많았던 뎃상이 자꾸만 늘어가고, 보관할 곳이 점점 더 없어졌다. 지난 이사의 기억들이 있기때문에 주변으로 집을 찾았다. 그리고 네번째 이사. 이사를 할때는 무엇보다 3-4층에서 짐을 내리고 올리는게 가장 힘들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들에 살고 유럽의 평균적인 건물의 계단은 둥글둥글 나선형이거나 말이안되게 좁거나 해서 장을 조금 많이봐도 쉽지않다. 그런데 캐리어를 30킬로정도 채워서 하루에 몇번씩 며칠을 오르내리다 보면 내릴땐 캐리어를 거의 던지게 된다. 나는 옷이나 물건을 사면 그게 아주 싸구려여도 꽤 오래 얌전히 쓰는 편인데 캐리어는 그래서 유학생활동안 자주 바꿀수 밖에 없었다. 내 5번째 집은 무려 2 pièces. 내 유학생활 중 가장 큰 집이였다. 여기 사는 동안 엄마도 한번 다녀가고, 새해에는 친구들을 꽤 초대하기도 하고, 벽에 큰 종이를 붙여놓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2년을 살았다. 그리고 떠나게됐다.

이사할때마다 짐을 버려대고 나름 노하우가 생겼다고 해도 맨손으로 하는 이사는 내 체력의 가장 큰 한계를 겪게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주변으로 집을 찾았다. 물론 방은 하나로 조금 더 싼곳으로. 그래서 다섯번째 이사. 이곳은 지금까지 중 가장 작은 곳이였다. 친구도 초대하지 않았고 큰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곳에 사는 동안 비디오를 시작했다. 작업 과정이나 그 세계가 매력적인게 1번이였지만 종이나 maquette같은 작품에 대한 짐이 생기지 않는다는것도 당시 내가 비디오에 푹 빠질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였던것 같다. 이곳에서도 2년을 살았다. 다시 살아볼 수 있을까 싶은 곳. 아마 살 수는 있을꺼다. 그래도 이곳에서 많은 작업과 일들이 지나갔으니까.

여섯번째 이사는 Paris로의 이사. Grenoble에서 Dijon으로 갈때도 그랬지만 Dijon에서 Paris로 올때도 조금의 미련도 없이 떠났다. 마지막 석사 학위 시험을 보고 이틀뒤부터. 당시 Sy언니의 남편이 많이 도와주셨고, 그분이 지금의 이 집을 구해주시기도 했다. 꼭대기라고 해도 겨우 4-5층이지만 늘 그런곳에서 작은 창으로 하늘을 빤히 바라보는게 익숙하던 나에게 이곳은 RDC. 그거 하나만 빼면 모든게 다 마음에 들었다. 아 물론 월세는 Dijon의 2-3배.

그 이후로 3년반, 가장 오랜시간동안 한집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심지어 내년부터는 두집살림을 시작하려고 한다. 충분히 감당해 낼지 아님 결국 하나를 정리하게 될지, 어쩌면 양쪽 다 버리게 될지. 살아봐야 안다. 살아봐야 한다.


유물
첫번째 집에 살기 시작했을 때, 처음 장을 보러가서 사온 물건 중에서 지금까지 계속 같이하고 있는 물건이 두개가 있다. 그냥 있는것이 아니라 여전히 일상에서 아주 자주 사용하는 아이템 : 

1) cafetière italienne à 2 personnes
가장 뜨겁고 진한 커피를 쉽게 만들 수 있다. 기본스타일의 모양, 가장 작은 사이즈. 쇳덩이이기 때문에 망가질일이 없다. 이사할때 깨질 일도 없고, 전기 스토브이다보니 그을릴일도 없다. 가운데 필터쪽 고무가 낡긴 했다. 내년중에 한국에도 같은걸 하나 사다놓을까 한다.

2) sèche-cheveux

프랑스에서 전자제품을 파는 두 양대산맥 Fnac과 Darty. 그중 거리상 가까웠던 Darty를 먼저 가보게 됐다. 가장 싼것중에 두번째 것으로 산 헤어드라이기. 지금까지도 매일같이 쓴다. 대신 어디 갈때는 왠만해서 드라이기가 있거나 그냥 없이 말려도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지고 다니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크고 화려한 전자제품들을 쓰다가 오면 뭔가 작고 초라한 바람을 낸다. 몇일 지나면 그런느낌없이 역할을 잘 해내기만 한다. 내가 가진 많은것들이 그렇다. 나의 échelle에 맞는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