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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9

Sur le feu. (불에 관하여.)

< Amour et Haine. - L’amour et la haine ne sont pas aveugles, mais aveuglés par le feu qu’ils portent avec eux. > 
( Love and hatred are not blind, but are blinded by the fire they themselves carry with them.)
(사랑과 증오는 눈을 멀게 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들이 가져오는 불로 눈이 먼다.)

- Friedrich Nietzsche, Humain, trop humain

Photo Credit : JiSun LEE / 2011.08.13 / Geneva
Sur le Feu.

Une grappe de flammes attire les yeux avec sa lumière et sa chaleur étincelantes.
Le jeu de la lumière flotte dans le ciel et tombe sur les vagues de la rivière.
Le tas de bois empilé, du premier étage au second, et du deuxième au troisième, les flammes grimpent jusqu’au sommet.
Un grand morceau de lumière danse pendant un moment.
Dans la nuit, de petits éclats de lumière brillent dans les yeux des gens.

L'eau et l'air, la substance qui compose la vie fait la mort en même temps.
La figure originelle fond dans la flamme et ne dessine que les cendres d'une identité inconnue qui a traversé.
La sublime fleur clignotante est sans ombre.
Les grappes jaunes fleurissent en rouge et disparaissent rapidement.
Autour du moment où elle perd sa couleur progressivement et tombe la tête vers le bas, il y reste une ombre de l'empreinte noire.
L'odeur profonde de la mort assombrit l'ombre.

Le soleil brille. Il est en vie parce que qu’il brûle.
Le soleil se lève. C'est seulement alors que tous vivent.
Après un jour, le soleil se couche. Le sommeil dont la forme ressemble à la mort guérit la vie.
Dans la nuit sombre où même la lune est couverte dans les nuages, il y a de petites lumières allumées dans les rues, au-dessus de la table, à côté du chevet.
La petite bougie qui servait aux yeux d'un enfant illumine l'immense place et devient le guide des aveugles.
Pour allumer une ampoule comme un œuf, la sueur sèche et chaude s'écoule dans les terres désertiques.

La rivière du feu qui coule profondément dans la terre s'étend aux sommets et couvre le monde.
Une petite graine restante brûle le bâtiment et enlève d’un coup le passé et le présent.
Les pompiers couverts de suie avancent les pas dans les flammes chaudes du monde froid.
Dans la maison qui est devenue cendre, seuls les souvenirs qui n'ont pas été oubliés restent avec une brume silencieuse.

La fumée monte de la cheminée d'une maison abandonnée que même le Père Noël aurait oubliée. Quelque chose devrait brûler, et quelqu'un devrait vivre.
Le feu ressemble à l'automne abondant qui fleurit, avec la chaleur qui fond en hiver, la fumée nourrissant le printemps affamé et la lumière allumant la nuit de l'été.
Dans la rue, un voyant rouge clignote. Les pieds occupés s'arrêtent en place.
Pendant la pause, le ciel, les oiseaux, les gens et les voitures semblent de plus en plus occupés.
Une partie de la musique qui coule dans les écouteurs passe.
La saison passe également et les feuilles rouges sont de nouveau vertes.
Je reprends mes pas arrêtés.
Le monde meut toujours.

Photo Credit : JiSun LEE / 2009.03.20 / Dijon
불에 관하여.

한 떨기의 불꽃은 영롱한 빛과 뜨거운 열기로 눈길을 사로 잡는다. 
하늘 위에서 터지는 빛의 놀음은 강가의 물결 위를 날으며 떨어진다.
쌓아놓은 나뭇더미, 1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3층으로, 불길은 손을 잡고 정상까지 오른다. 
커다란 빛덩어리는 한참동안 춤을 춘다.
늦은 밤, 사람들의 눈가에는 작은 빛조각들이 반짝인다.

물과 공기, 삶을 구성하는 물질은 동시에 죽음을 만들어낸다. 
본연의 모습은 화염속에서 녹아내리고, 신원을 알 수 없는 잿더미만이 지나간 불길을 그린다. 
알록달록 화려하던 불꽃 한송이는 그림자가 없다.
노란 송이는 붉게 피어나고 곧 시들어 간다.
조금씩 색을 잃고 고개를 숙일 즈음 이 주변에는 까만 그을림이 그림자가 되어있다. 
죽음의 묘한 냄새에 그림자를 더 짙게 깔린다.

해는 타오른다. 타고 있기에 살아있다.
해는 떠오른다. 그래야만 우리는 살 수 있다.
하루가 지나면 해가 진다. 죽음의 형태를 꼭 닮은 수면은 삶을 치유한다.
달빛도 구름에 가린 깜깜한 밤에는 길거리에, 식탁 위에, 침대 맡에 작은 불빛이 켜진다.
아이의 눈이 되어주던 작은 촛불은 광장을 밝히고 눈먼자들의 길라잡이가 되려 마음을 모은다.
달걀만한 전구하나를 켜기 위해서 사막같이 마른 땅에는 오래고 뜨거운 땀이 흐른다.

바다와 같이 땅속을 흐르던 불의 강은 산봉우리로 뻗어져나와 세상을 덮는다.
작게 남아 있는 씨앗은 무심하게 건물을 불태우고, 과거도 현재도 한순간에 앗아간다.
그을림으로 화장한 소방대원들은 싸늘한 세상에도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발을 내딘다.
재가 되어버린 집에는 함께 망각되지 못한 기억만이 아지랑이로 남아 잔잔하게 피어오른다.

산타할아버지도 지나칠 듯 버려진 집 굴뚝에 연기가 난다. 아궁이 속 무언가는 타고 있고, 누군가가 살고 있다.
한 겨울 따듯하게 녹여주는 열, 허기진 봄을 채우는 연기, 뜨거운 여름 밤을 밝히는 빛과 함께 불은 만개한 가을의 색을 닮았다.
길거리, 빨간불이 깜빡인다. 바쁘게 움직이던 발걸음은 제자리에 멈춘다.
잠깐의 멈춤동안 주변에는 하늘도, 새도, 사람도, 자동차도 더욱더 바쁘게 움직인다.
이어폰 속 흐르는 음악 한구절이 지나간다.
계절이 지나고 붉은 잎은 다시 초록이 되어있다.
멈춰있던 발걸음을 옮긴다. 
세상은 여전히 움직인다.

Photo Credit : JiSun LEE / 2014.12.31 / Paris
About the Fire.

A cluster of flame captures the eye with its gleaming light and heat.
The play of light popping out of the sky flies and falls on the waves of the river.
Stacked on the pile of woods, from the first floor to the second, and from the second to the third, the flames climb to the top.
A large chunk of light dances for a while.
Late in the night, small pieces of light glisten in people's eyes.

Water and air, the substance which composes the life makes up the death at the same time.
The original figure melts in the flame and draws only the ashes of unknown identity that has passed through.
The flashing and colorful flower has no shadow.
Yellow clusters bloom in red and soon fade away.
Around the time when it loses its color gradually and hangs the head down, there remains the shadow of the black gravure. 
Deep smell of death darkens the shadow.

The sun blazes. It’s alive because burning.
The sun rises. Only then can all live.
After a day, the sun sets. The sleep that resembles the form of death heals life.
In the dark night where even the moonlight is covered in the clouds, There appear little lights on the streets, above the table, next to the bedside.
The small candle which served to the eyes of a child brightens the huge square and becomes the guide of the blinds.
In order to turn on a bulb like an egg, dry and hot sweat flows in the desert-like land.

The river of fire that flows deep in the earth stretches out to the mountain peaks and covers the world.
A tiny remaining seed burns the building out, and momentarily takes away the past and the present.
The soot-covered firemen step into the hot flames of the cold world.
In the home that has become ashes, only memories that have not been forgotten remain with a quiet haze.

Smoke goes up from the chimney of an abandoned house which even Santa would have forgotten. Something should be burning, and someone should be living.
The fire resembles the colorfully blooming autumn, with the warmth melting in the winter, the smoke filling the hungry spring, and the light shinning the night of the summer.
On the street, a red light blinks. The busy feet stop in place.
During the pause, the sky, the birds, the people, and the cars seem more and more busy.
A part of the music flowing in the earphone passes by.
The season passes as well and the red leaves are green again.
I take steps that have stopped.
The world still moves.

20170529

VIE-DEO #50

Photo Credit : JiSun LEE / 2017.05.19 / Paris

2011년부터 비디오를 만들고 있다. 
1-2학년때 B교수의 과제로 만들어본 두작품은 내 비디오그래피에서 제외하고 있다. 
3학년때 1분 남짓한 자그마한 사람모양이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에서 시작했다. 
표정없는 학생이 말없이 만들어 가던 비디오에 조금씩 생명이 생겨났다.
초창기 비디오로 빠져드는 나를 가만히 지켜봐준 B학사지도교수와 하나씩 창문을 열어갈수 있게 이끌어준 C석사지도교수는 고맙고 멋진 할아버지들이였다. 
졸업한 이후로도 작은 영상들이 하나씩 이어졌다.
누가 지원해 주지도 제작해주지도 않고, 만들라고 시키지도 않고, 만들어서 돈이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자꾸 아이디어가 비디오의 형태로 나오고, 아이디어가 모이면 만들고, 만들면 두근거리고 그랬다. 
졸업하자 마자 올라온 파리에서의 작가생활을 바로 시작하게 해준것도 결국 비디오였다.

2015년부터 직접 촬영한 영상들로 비디오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 그때 1분만큼씩 찍어둔 조각이 많아지나보니 작업으로 모으지 않을수가 없었다.
한 작업을 위해서 머나먼 촬영을 떠나진 못하지만 언제든 재료가 될 장면들을 남겨두려고 많이 멈춰가며 다녔다.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편집이 금방 끝나지만 소스에 흠이 있으면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촬영버튼을 누르자마자 원하지 않는 수많은 움직임과 소리까지 담는 영상이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거의 사진만큼 좋아졌다. 
그러다 보니 점점 화질에 욕심이 나고 구도에 겉멋이 들고 그랬다.
학교 초반에 작업하던 사진들이 그랬다.
그림과 다르게 사진은 찰칵 하는순간 배경에 주인공까지 모두 담겨 버려서 그걸 다 감당하질 못했다.
최대한 희거나 검은 비어있는 배경에 촬영을 하고, 아니면 그냥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다시 그림으로 그려서 뺄 것들을 뺐다.
그런데 사진의 속도는 그림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멈춰서 한두시간 그림으로 스케치하는 대신 우선 사진부터 찍고, 날이 지나기 전에 날짜대로 정리를 하고, 베스트를 표시해 정리해두고 그랬다.
그렇게 사진과 많이 가까워졌다.
너무 일상적이고 쉬운 접근이여서 사진을 작업처럼 여기고 전시할 생각도 못했다.
때때로 한계를 만나지만 작은 똑딱이로 다 해결했할 수 있었다.

영상은 그런 점에 더해서 시간에 대한 개념이 어마어마 확장된다.
비디오는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미디어이다.
1초가 25칸으로 나눠지는건 당연하고, 컴퓨터에서의 작업도 훨씬 더디고 오래걸린다. 
지금의 맥북은 거의 소리를 내지 않지만 그 전에 지나간 노트북 두가지는 비디오 작업에 하염없이 열을 냈다. 몇시간에 걸쳐 렌더링을 하다가 열받아 툭 꺼지면 모든게 다시 시작. 옆에서 완성의 경쾌한 소리가 울릴때까지 노트북에 부채질을 해대고 얼음팩을 대고 그랬다.
비디오의 역사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간다. 그런데 기술을 갖춘다고 좋은 작업이 되진 않는다. 
그래도 기술이 있으면 있어보이게는 나온다.
상상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는 편집 프로그램들은 동시에 내가 쓸줄 아는만큼만 상상하게 제한하기도 한다.
0의 시간인 비디오는 없다. 
동시에 그 어떤 비디오도 플레이되지 않는 동안에는 0의 시간에 갇힌다.

2년정도 전부터 멀티미디어 작가라고 소개한다.
비디오, 뎃상, 사진, 오브제를 건드리고 있다보니 타이틀이 자꾸 길어졌었는데, 영어로도 불어로도 한글로도 똑같은 표현, 간단 명료하게 되었다.
그 모든것들을 한 단어의 주제로 말하라고 하면 조금 머뭇거리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주제였다.
‘아이’, 목소리, 본것과 읽은것, 남겨진 장면들과 잊으려는 것들, 지나온 얼굴들과 그려진 형태들이 모든것의 기본 재료들이다.
나에서 삶과 세상으로 뻗어나가려고 애쓰고 있다.
아직은 댓가 없이 부탁한 일이 대부분이지만 최근에는 적정한 댓가를 조건으로 건 의뢰일도 있었다.
주인을 찾아간 작은 드로잉 몇점도 응원의 손길로 충분했고, 함께 나이들어 가는 선생님의 초상화 일도 좋았고, 군더더기 없이 지나간 비디오 작업도 괜찮았다.
어제 오늘 먹은 밥값이 아직 작업에서 나오지는 못하지만 작년에 비해서 아주 조금의 발전이다.

나는 밤 12시를 넘겨서는 공부도 일도 잘 못한다.
요즘에는 이틀정도를 거의 못자고 하루를 쓰려져 몰아 자는 경우가 생긴다.
다행인건 몇시에 잠들던 아침 그시간에는 눈이 떠진다.
아침은 내게 매일같이 주어지는 굉장한 시간이다.
글자 그대로 지금 나의 모든것을 쏟아부은 50번째 비디오의 이미지가 완성됐다. 
엔딩크레딧을 넣지 않은 상태에서 5분 55초.
제목은 Horizon 혹은 HORiZON
거창하게 얘기하는 것에 비해서 그냥 나의 또 다른 새로운 작품이다.
오랜만에 ‘i’시리즈, 다시 흑백이고 다시 애니메이션이다.
내일 음악을 만들꺼다.

이 작품이 잘 완성되면 이제 내 비디오그래피는 50개의 영상으로 채워진다.
만든순서로 1번은 « i : alone »
오빠작품에 삽입영상이라던지, 최근 넘겨준 의뢰일은 제외.
50개에는 i 시리즈를 시작으로 쓰이거나 쓰이지 않은 전시나 페스티발의 티저도 있고, 조카의 탄생을 위한 축하선물, 가장 많은 플레이 수를 기록한 사이트 메인화면 영상, 음악가의 의뢰로 만든 영상과 음악공연을 위해 다시 손본 영상, 석사논문을 비디오화해본 영상, 목소리와 언어가 다른 영상, 몇명의 수집가의 책장정도에 담겨있을 영상과 퀘백 배급사의 로고를 달게된 영상, 그리고 등등이 있다.
여러 전시에서 소개된 것과, 나보다 더 많은 대륙을 가본 것, 한번도 빛을 보지 못한 것, 지금 보면 부끄러운 것, 오랜만에 보니 좋은 것들.
작년과 올해는 작은 스케치와 비디오를 하염없이 만들었다.
한순간도 둘 중에 하나라도 쉰적이 없다. 
그냥의 것들을 만들고 싶지 않다.

파리에 돌아오자마자 밀린 과제처럼 해야할 작업이 쌓였다.
가만히 두면 좋아서 할 작업이 나를 밀치니까 힘들었다.
당연히 누리던 잠시 걸으러 나가는 시간도, 커피 한잔 마시러 나가는 시간도 아까울만큼 ‘시간’이 달렸다.
갯수와 분량이 정해진 일이다 보니 그랬다.
무엇을 위해서 뭐하려고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었다.
도대체 왜인지 헷갈렸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잠결에 정신이 조금 들었다.
내년까지만 약속된 일들을 위해 달리고 큰 쉼표를 찍어야겠다.

몇일전 기역자로 쭉 유지했던 책상 구조를 바꿨다.
계속 자리를 못잡고 비켜있던 키보드가 오른편에 자리를 잡았다.
카메라와 모니터, 장비는 늘어간다. 그냥 늘어만 가는게 아니고 머리가 윙윙거리게 돌아가고, 낡은듯 고장났다가 살아나고, 버릴만큼 느려지고 그런다. 
6월은 시작하자마자 오랜 친구도 오고, 친구가 가면 오빠가 오고, 오빠가 가면 지인이 들르고, 지인이 가면 반가운 친구도 온다.
다가오는 일정을 생각하니 작업시간을 어떻게 확보하다가 걱정이었다. 
근데 아마 그들이 물을 주고 갈것 같다.
내일은 음악을 만들고 잠시만 숨을 쉬고 와야겠다.

유사화효가행.

20170212

Artistic List

Photo credit : JiSun LEE / 2017.01.19 / Paris

Artistic List :
  1. Artistic thinkings and thoughts
  2. Artistic language and form
  3. Artistic empathy and sympathy
  4. Artistic understanding and expressing
  5. Artistic perception and conception
  6. Artistic reading and drawing
  7. Artistic being and seeing
  8. Artistic sounding and listening
  9. Artistic view and scene
  10. Artistic universe and light
  11. Artistic time and duration
  12. Artistic living and lives
  13. Artistic self and belongings

Sur l'aller-retour. (왕복에 대하여.)

Photo credit : JiSun LEE / 2017.01.01 / Train to Paris

Sur l’aller-retour. (Texte écrit lors du trajet Séoul>Paris en octobre 2016, traduit et publié lors du trajet Paris>Séoul en février 2017)

Alors que le temps de retour se raccourcit, le changement du monde s’accélère. La même coiffure ainsi que les mêmes tenues, je retourne au monde qui m’a laissé une parole qui n’a jamais été oubliée. Pourtant, lui, il a changé, avec une apparence nouvelle, les mots effacés, les cheveux coupés. À Séoul, ville fourrée de tant de choses, il se crée toujours des situations qui sont à peine ou jamais compréhensibles, partout et simultanément. Intégrer dans une société puis la changer, composer une famille et attendre un bébé, avoir un amoureux ou se séparer. Les événements plus ou moins importants surgissent, passent et s’effacent. Les marches des gens se précipitent pour suivre la vitesse de la ville. Les transports aussi balancent le long de leur marche.

Que la tête de l’avion s’oriente vers la Corée ou la France, le battement du coeur change de rythme qui s’adapte aux heures du lieu différent. Au moment du retour, les préoccupations qui pesaient autant, la musique qui faisait pleurer, le texte qui donnait du sourire, ont presque évaporé. Seules les nouvelles passions restent inscrites dans le cerveau. Dès l’arrivée à l’aéroport de Paris, j’arrive d’un coup à monter les escaliers avec les bagages qui étaient impossibles de lever d’un centimètre à Séoul. Les exclamations et les pensées se formulent très naturellement en français. ‘Me voilà chez moi’ ne se dit plus à Dijon comme il y a quelques années, mais plutôt à la première respiration à Paris, ou bien dans quelques autres endroits qui me reposent.

Une fois rentrée à la maison après un certain trajet depuis l’aéroport, il se trouve avant tout les traces non familières de celui qui y a habité temporairement pendant mon absence. Coin par coin, je nettoie les taches, range le désordre non intentionnel pour retrouver chez moi. Certains objets se remettent facilement à leur place d’avant, d’autres attendent quelques jours que mes habitudes reviennent. Deux ou trois nuits passées, presque tout reprend sa position la plus confortable.

Le matin si sombre, les camions de vide-ordure ou de nettoyage, des salutations mélangées à des bruits familiers. Je sors la “liste des affaires dès le retour”, remplie précédemment contre la peur d’oubli, et commence à cocher celle qui semble la plus urgente. Successivement, je me réhabitue au quotidien en donnant des cours de langue réservés comme avant, en me rendant aux rendez-vous pris à l’avance, et en réarrangeant tout ce que je peux. Rien que familier, à un moment inattendu dans le quotidien, tout apparaît étranger, nostalgique, confondu.

L’atmosphère de l’aéroport me stimule encore et le premier air me fait sentir le sol sur lequel je me dresse. Paris ne ressemble plus à la ville que j’avais visitée lors de l’enfance. Tandis que chaque élément se distingue d’une ville à l’autre, Paris et Séoul sont si stéréoscopiques à mes yeux. La première fois s’éloigne au cours du temps. Néanmoins, chaque aller et retour marquent une autre première fois pour toute action : premier matin, premier repas, premier café, etc. après le retour. C’est comme si tout est pour la dernière fois avant le départ.

Pendant le trajet en train ou en avion, dont la durée est bien déterminée, il y a tant d’affaires qui remplissent le temps. Le livre acheté à la gare invite à se plonger dans un univers à part, le papier vierge devient un dessin, le nouvel album de musique ouvre sa porte, une langue se traduit dans une autre, etc. La répétition de l’aller-retour ou bien du retour-aller ne se fait pas seulement aux voyages, mais dans la vie de tous. À une durée close comme deux mois, trois semaines, ou dix jours, tout peut se passer, changer, naître ou disparaître. 

Enfin, le monde est différent parce qu’on est parti, parce qu’on est retourné, reparti, revenu. L’aller fait voir un autre visage de la journée après le retour, et le retour fait entendre la voix de la nuit avant l’aller. 

Photo credit : JiSun LEE / 2016.10.06 / Bus to Seoul

왕복에 관하여. (2016년 10월 서울>파리 여정에 쓰고, 2017년 2월 파리>서울 여정에 번역 및 게재함.)

다시 돌아가는 시간은 더 짧아지는데 그 곳은 자꾸 더 변해있다. 머리도 옷차림도 그대로 지난약속을 마음에 되새기고 그곳에 도착한다. 그곳은 어느새 말끔하게 바껴있고, 지난 말과 약속은 깔끔하게 지워져 있다. 가득하고 빠른 서울에서는 이해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여기 저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지워진다. 직장에 들어가거나 회사를 바꾸는 일. 가정이 생기고 아이가 태어나는 일. 애인이 생기거나 헤어지는 일. 인생에 큰 일들이 넘치게 지나가고, 도시의 빠른 리듬을 따라가느라 사람들의 발걸음도 버스도 지하철도 꿀렁거린다. 

비행기의 머리가 한국을 향할 때와 프랑스를 향할 때, 도시의 리듬에 맞춰 달리던 시간에 따라 심장박동도 달라진다. 갈 때의 고민이 뭐였는지 어떤 음악에 울고 웃었는지도 잘 떠오르지 않고 다시 새로운 다짐들로만 가득하다. 두손으로도 낑낑대고 들지 못하던 캐리어는 파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양손 가득히 번쩍번쩍 들게되고, 감탄문이나 중얼거림은 자연스레 불어로 바뀐다. 몇년전 디종 기차역에서 너나할것 없이 내뱉던 ‘왔구나’라는 말는 이제 새로운 장소에서 더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공항에서 부터 그리 짧지 않은 길을 지나 집에 도착하면 빌려쓰고간 사람의 흔적이 곳곳에 뭍어있음을 확인한다. 다시 한 구석씩 정리하고 닦다보면 어떤것들은 당연히 그 자리, 그 모양이 되고, 어떤것들은 원래가 어디인지 잘 떠오르질 않아 적당한 자리에 놓인다. 몇일이 지나면 편리와 익숙에 의해 어느샌가 그때 그 자리를 되찾는다. 비로소 우리집이 돌아온다.

부쩍 깜깜한 아침, 아침이면 지나가던 청소차와 쓰레기 수거차. 소음에 섞인 레파토리같은 인삿말들. 출발할 때부터 하나씩 메모해 놓았던 ‘돌아오면 챙겨야할 리스트’를 바라보고, 그 중 빨간불이 들어오는 것부터 처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당연한 수업들과 약속된 바깥일을 보고, 정리에 또 다른 정리를 하며 하루 이틀을 보낸다. 적응이라는게 따로 필요없는 일상 안에서, 문득, 모든게 그립고 모든게 낯설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아직도 조금은 설레이는 공항의 분위기를 지나 밖을 나서서 처음 마시는 공기는 내가 어느곳에 발을 딛고 있는지 온몸에 전파를 보낸다. 아주 어릴적에 방문해서 첫인상이 잘 기억나지 않는 파리는, 내가 태어났기에 그 순간을 더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서울과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기도, 모든게 똑같기도 하다. 처음이라는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염없이 멀어진다. 그런데 떠났다가 돌아옴을 반복할 때마다 첫 식사, 첫날 밤, 첫 커피 같이 다시 하나하나를 처음으로 점찍는다. 떠나기 전 행동 하나하나가 ‘이번 마지막’이듯이.

출발과 도착시간이 명확한 기차나 비행기에서의 몇시간은 다양한 일들로 채워진다. 역에서 사서 주머니에 넣고 탄 책으로 잠시 다른 세상에 빠지기도 하고, 비어있던 종이가 그림이 되기도 하고, 처음 듣는 새 앨범을 몇번정도 감상할 수도 있고,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로 뒤바뀌기도 한다. 여행때마다 반복되는 오고 감 혹은 가고 옴은 실은 인생이라는 길고 자잘한 여행에서도 만들어진다. 2달, 3주, 열흘과 같이 정해져있는 하나의 기간동안 그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고, 그 어떤 마음의 변화를 겪기도 하고, 특정한 몸의 변화를 겪기도 한다. 

세상은 돌아갔기 때문에, 혹은 돌아왔기 때문에 달라진다. 떠났기에 돌아온 후에 의식하지 못했던 낮의 표정을 보게하고, 돌아왔기에 떠나기 전 귀기울이지 않았던 밤의 목소리를 듣게한다. 

20161226

2016.12 : Sur le Métro (지하철에 관하여)

Daily sketch : JiSun LEE / 2016.12.05 / Pen on paper / 29.7x21 cm

La chaleur d’été couvre le corps et le vent d’automne souffle les cheveux. Les boules de neige et les gouttes de printemps transmettent du parfum humide. Imaginant une promenade agréable de différents sentiments saisonniers, nous nous retrouvons dans un lieu intérieur, entouré de murs. Dedans, la lumière jaunâtre éclaire la vue, le vent régulier touche les coins, et la chaleur machinale réchauffe l’air.

La batterie épuisée a besoin de rechargement, et il faut une pause à tout ce qui bouge. Tandis que les gens qui travaillent sous le soleil brûlant se mettent à l’abri grâce à une petite salle de repos, ceux qui ne voient que l’écran allumé à côté de la fenêtre voilée se permettent de respirer en dehors de son bureau.

Il s’érige des structures concrètes sur le sol vierge, il se creuse un monde en dessous de la forêt dense de bâtiments. Comme si les petites fourmis construisaient leur royaume vital dans le sable, les gens cherchent à étendre leurs surfaces de vie sous la terre. Ensuite, on y amène de l’eau, pend de la lumière et polit des chemins qui relient une chambre à l’autre. 

La circulation fourrée d’hommes et de voitures se remplace par une longue ligne de métro. Chaque station s’intitule d’après la particularité du quartier, et dessine un plan général en tant qu’indicateur du lieu. De 1 à 2, de jaune à violet, les lignes de métro se lient et relient sous la grande ville.
Les gens modernes qui commencent la journée par la sonnerie régulière du matin se jettent dans des véhicules qui accélèrent leurs pas. Des pneus roulent sur le sol et les lignes électriques descendent sous le sol. Une fois une petite place assurée dans le wagon turbulent, on se remet à taper le message, à écouter de la musique dans les écouteurs, et à jouer le jeu.

Le coup de matin se calme, puis la tranquillité arrive. Les gens montent et descendent avec la mine, le style et l’odeur qui reflètent le quartier où traverse le métro. Parfois, on croise les mêmes personnes qui répètent fidèlement sa journée à l’heure exacte dans la voiture identique. Il se passe également des vendeurs, chanteurs et mendiants familiers. 

Dans le train dont le précédant se succède par le suivant avec quelques minutes d’intervalle, les gens anonymes partagent le même espace et la même durée. Comme la porte automatique, on passe par ce moment singulier avec indifférence. Le corps vibrant et le bruit éparpillé dans sa vitesse métallique. Les trains brillants de Séoul et ceux anciens de Paris. La station de chez moi et celle de la première visite. Les sans-domiciles qui y habitent et les passagers qui s’y précipitent. Celui qui cherche une assise et celle qui se plonge dans la musique intime.

Le connecteur souterrain se rallonge et traverse la grande ville aujourd’hui. Dedans, les fourmis reprennent leur travail quotidien et construisent le royaume en laissant une trace différente d’hier. 

Sur le métro. JiSun LEE 2016.

Daily sketch : JiSun LEE / 2016.11.15 / Pen on paper / 29.7x21 cm

한여름 뜨거운 햇살을 온몸에 두르고, 마리카락을 이리저리 엉키는 가을 바람을 맞는다. 겨울의 눈방울과 봄의 빗방울이 축축하고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상상을 한다. 기분좋은 산책을 그리며 우리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진 실내에서 하얗거나 노란 빛으로 앞을 밝히고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과 온기를 느낀다.

죽어있는 배터리는 충전이 필요하고 움직이는 것 들에겐 멈추고 쉬어갈 공간이 필요하다. 뜨거운 태양과 살을 아리게 하는 찬바람 속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안쪽 피난처가 그 휴식처가 되고, 하늘의 색과는 상관없이 가려진 유리창 옆에서 책상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바깥 세상으로의 도피가 필요하다. 

비어있던 평지에는 건물이 올라서고, 이미 빽빽한 건물숲 밑으로는 지하세계가 넓혀진다. 작고 작은 개미들이 모래 밑 생존의 규칙에 맞춰 넓은 왕국을 세우듯이 일개미와 같은 사람들은 발 디딜 곳 없는 도시의 땅 속을 판다. 그 캄캄한 속에 물을 끌어오고 빛을 달고 이 구덩이에서 저 구덩이로 길을 닦는다. 

땅 위에서 얽히고 설킨 사람들과 자동차들은 땅 밑에서 하나의 기다란 지하철이 대신한다. 역은 그 동네의 특징을 담은 명찰을 달고 사람들의 지표가 되어 지도를 그린다. 1번에서 2번으로, 노란선에서 보라색 선으로, 선을 따라 이어지는 지하철은 커다란 도시를 잇고 또 잇는다.

매일 아침 울리는 알람소리에 하루를 시작하는 현대인들은 너나 할것 없이 발걸음을 대신해줄 이동수단에 몸을 맡긴다. 바퀴 달린 것들은 지상으로, 바퀴가 없는 이들은 지하로 내려가 숨막히게 덜컹대는 사람무더기 사이에 한 자리를 겨우 마련한다. 한숨 돌리고 나면 못다한 메세지를 적어 보내고,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다시 귀을 기울이고, 움직이기 힘든 손가락으로 다시 하던 게임을 이어간다. 

아침 한바탕이 지나고 나면 한적함이 찾아온다. 지나가는 동네에 따라 각기다른 차림과 표정에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밴 냄새를 풍기며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때로는 그시간 그칸에서 매일의 일과를 충실히 이어가는 사람들을 마주치거나 이 구역을 담당하는 판매원, 익숙한 음악가, 눈에 익는 구걸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몇분이 채 안되는 간격으로 쉼없이 이어가는 길다란 기차 안, 같은 칸에 몸을 담고 시간을 공유하는 익명의 사람들. 무관심하게 열리고 닫히는 자동문처럼 그 특별한 시간을 자연스럽게 지나친다. 덜컹이는 몸체와 빠른속도에 흩날리는 쇳덩이의 소음. 서울의 밝은 지하철과 파리의 낡은 지하철. 집이 있는곳의 역과 처음 내려본 역. 그곳을 집 삼아 떠도는 사람들과 오직 목적지 만을 생각하며 무심한 사람들. 비어있는 자리를 향해 돌진하는 이들과 이어폰 속 음악에 모든것을 맡겨버리는 이들. 

칸칸이 이어져있는 지하의 연결고리는 지금도 넓은 도시를 가로지른다. 그 안에서 오늘도 개미들은 자신의 일을 찾아 일상을 반복하고, 어제와 조금 다른 흔적을 남기고, 왕국을 지어간다.

지하철에 관하여. 이지선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