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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9

Porte au numéro 7.

Photo credit : JiSun LEE / 2017.05.21 / Paris

Août parisien
파리가 8월을 만나면,
조용하다. 아침에도 한낮에도 창밖으로 들리는건 공사소리뿐이다. 공사소리마저 없었으면 이 길에 나 혼자 사나 의심을 갖게 된다.
편지가 오질 않는다. 메일을 보내면 1초만에 답이 오는데 휴가중이라는 자동응답 메세지이다. 
집 관리인이 자기 집으로 떠나있고, 여행사가 여행을 떠나있다. 길거리나 지하철에는 불어보다 영어가 더 많이 들리는 것 같다.
빵집도 떠나서 빵을 사려면 조금 더 떨어져있는 곳으로 걸어가야한다. 냉동마트에서 계산을 하고 나오는 아줌마가 직원에게 힘내라고 인사한다.
올해는 안간다던 한국사람들은 다 한국에 가있다. 실은 어디에들 있는지 잘은 모른다.

Cyber Being
모든 언어수업들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방학이다보니 파리에서 꾸준히 얼굴보던 학생들도 잠시 한국에 가있고, 제네바와 한국의 학생들은 원래가 그렇다.
내가 유럽에 있을 경우에는 시차가 잘 안맞으면 아주이른 새벽이나 아침에 수업을 하게된다. 
내가 한국에 있을 경우에는 아주 늦은 밤이나 다시 아주 이른 새벽이 된다. 
시도 때도 없이 왔다갔다 하고, 언어를 전공으로 하지도 않은 나에게 어떤 학생들은 당장의 중요한 운명을 지도해주기를 부탁한다. 그래서 시차고 뭐고 당연히 함께한다. 온라인수업은 오고가는 시간이 없어서 정확한 시간만큼 수업을 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아무래도 사이버 인간을 대할때 학생들의 책임감이 좀 약해진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생각보다 인터넷환경이 안정적이지가 않다.
내가 한국에 가면 학생 둘이 다시 파리로 온다. 한동안은 우리 계속 화상으로만 수업해야한다. 미안.

New Face
새로운 학생 하나가 있다. 잠시 포트폴리오 준비를 도와주는데 지금으로는 유일하게 얼굴을 직접보고 수업한다. 유일하게 우리집에 와서 수업하는 학생이다. 디종에서의 비밀수업 이후에는 단 한번도 절대로 집에서는 수업을 안했는데 학생 집이 좀 멀다보니 다른 대안이 없었다. 
학생의 세계에서 출발하여 각종 작업얘기를 한다. 보자르를 준비할때, 보자르 다닐때, 내가 작업구상하던 예전과 지금이 교차한다. 

Mother or Woman, our neighbors.
학생들은 없지만 두 아들을 한국에 보내고 적적해하시는 어머님과 저녁을 하기로 했다. 한두번 식사를 하자고 하셨었는데 매번 상황이 발생했었다. 그냥 사람으로, 여자로 보자면 나와는 거의 반대의 성향을 가진 분이신데 결국엔 좋은분이시다. 짧은 시간동안 여러가지 힘든 상황을 겪으셨고 어쩌다보니 내가 옆에 있게 되버렸다. 그렇다고 많은 도움을 준건 아니지만 감사하게도 때때로 오래 보고싶다고 말씀하신다. 
온전히 수업을 하면서 생긴 인연으로 이어지고 또 이어져서 만난사람들. 두 아들도 어머님도 지금의 파리의 이웃들이다. 
파리에는 이웃들이 있다. 과거가 되버린 사람이 많지만 기억이 남아버렸다. 

7, 8,9,10
오늘은 8월9일. 어제는 가장 친한 친구의 생일이었고 올해도 내가 첫번째로 메세지를 보냈다고 했다. 이번엔 하트 이모티콘도 안보냈는데 마음을 받아줬다. 
내일은 10일. 그러니까 7일 뒤면 또 무거운 캐리어와 한판 해야한다. 그리고 날짜상으로 8일 뒤면 가을에서 여름으로 뚝 하고 떨어진다. 
올해 8월은 가을과도 같은 날씨이다. 흐린 하늘과 가끔 비추는 햇빛과 쌀쌀한 바람과 툭하면 흩날리는 빗방울. 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날씨이다. 이 날씨 좋아할 만한 사람들 몇몇 더있는데 함께하지 못해 아쉽군.

Deutsch
독일어 공부책을 하나 샀다. 더불어 새 노트도 하나 샀다. 아주 오랜만이다. 당장에 공부를 시작할수 있을것만 같았는데 그러지는 못했다. 또 책욕심이 나서 시나리오 공부책이랑 시집도 들었다 놨다 했는데, 아직 시작도 못한 책들이 떠올라서 그것들은 표지만 찍어왔다. 
하루일과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은 리스트가 있다. 아주 성실하게 리스트에 있는것들을 하나씩 순서대로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매일 벅찬 행복과 뿌듯한 피곤함에 잠이 들것 같다. 적어도 3개월은 그렇게 해보고 싶다.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Home Atelier
지금 파리의 집은 뭘 하든 가장 효율적으로 빠르게 만들어 낼수가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가장 처지고 흐트러지는 곳이기도 하다. 아침을 맞이하자 마자 상쾌한 작업장이 되기도 하지만 아주 쉽게 숨막히는 감옥같은 곳으로 변하기도 한다.
내년이면 이사를 계획한다. 원래는 체류증을 내년 하반기로 잡고 그 이후에나 뭔가 움직이려고 했는데 그 걸림돌이 훅 사라졌으니 그냥 내년 하반기에 이사를 해야할것 같다. 파리의 집과 계양의 집. 둘다 정리를 하고, 한 곳, 새로운 곳으로 가는것을 꿈꾼다. 
지금 머릿속으로는 여러가지 옵션이 있다. 현실이 얼만큼 허용하는가는 가봐야 알겠다.

Circle
The circle of life. 라이온킹의 마지막 노래 가사.
The circle 한달전쯤인가 봤던 정말 싫었던 영화.
Circuler 내 삶을 한동안 차지했고 이제 곧 시작이 다가오는 일.
동그란 이야기들, 네모난 얼굴들, 구불거리는 시간들.

Trace bronzée
나름대로 여름이면 조금 타고 겨울이면 다시 돌아온다. 물론 하얗다, 창백하다, 핏기가 없다는 말은 익숙하다. 근데 요즘 한국 여자들을 보면 나보다 더 하얗고 뽀얀 사람들이 많은것 같은데도 그렇다. 같이 사진을 찍어도 비슷한것 같은데 아무래도 표정이나 몸짓의 문제인가.
아무튼 이번 여름에도 몸에 햇빛의 자국이 남았다. 하나는 오른쪽 새끼손가락에 반지부분만 하얗게 남은 자국. 다른 하나는 나와 많은 걸음을 걸어준 그 신발의 경계만큼만 새까맣게 탄 발등 위의 자국.

Chaussures
신발은 편하고 심플한것을 좋아한다. 편한것이 우선이지만 디자인도 내 눈에 괜찮은 심플함이어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의 눈에는 할머니 신발로 보이는것 같다. 다른 계절에 신는건 젊은데 특히 여름에 신는것이 좀 그렇다. 
그냥 매일 신고, 어디가 찢어지거나 닳아버리면 비슷한 새신을 사서 갈아신은 후 옛신을 버리고 온다. 그래도 내 전시 오프닝이라던지 특정한 공연을 보러가거나 결혼식 같은것들을 갈 때에는 구두를 신는다. 10년쯤 전에 산 5cm정도 굽을 가진 구두인데 내가 가진것들중 가장 굽의 존재가 있다. 그 신발을 신으면 딱딱거린다. 그것도 이제는 편할만큼 편해진 신발이다. 

Pas à Pas
자꾸 잃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잊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물건이나 소모품은 순간적으로 상실감만 지나가면 상실을 망각하고 산다. 그런데 마음이나 생각은 잃기도 잊기도 싫은데 나도 모르게 증발하듯이 날아가버린다.

그래서 오늘도 주문을 외운다. 유사화효가행.

20170513

La porte au numéro 6.

Photo credit : JiSun LEE / 2017.02.08 / Paris


돌아온지 일주일이 되려한다.

Mai, beau temps.
날씨가 좋다. 햇빛 사이로 비가 내리기도 하지만 덥지도 춥지도 않은 좋은 기온이다. 하늘은 한껏 파랗고 그름도 밀도있게 예쁘다. 하늘이 그리웠다.

Décalage
아침은 늘 똑같이 일어났지만 밤을 버티지 못하게 했던 시차는 적응됐다. 실은 시차인지 그냥 누적된 피로인지 생리주기때문에 졸렸던건지 잘 모르겠다. 셋 다겠지.

Oreillers
침대머리가 동그라니 올라와있다. 그동안 괜히 못사던 베개를 인터넷 주문했다. 실은 그냥 쿠션용으로 산게 아주 빠르게 도착했고 진짜 베개용으로 주문한건 아직 배송중이다. 몇일 안됐지만 자면서 뒷통수가 뻐근해서 깨는일은 없었다.

Appartement
그동안의 단기임대 중 가장 깨끗하게 쓰고 가셨다. 다만, plaques électriques이 죽었다. 모른척하고 그냥 지낼수 없는 부분이라 바로 집주인에게 demande d’entretien을 했다. 더 이전부터 문제가 있었던 부엌 수돗물도 같이 얘기했다. 언제부터인가 부얶에 차가운 물만 안나온다. 연락하고 하루만에 집주인 부부도 다녀가고 또 곧이어 관리하는 회사쪽에서 사람이 다녀갔다. 접선의 문제인줄 알았지만 plaques가 문제이고, 수도는 robinet가 문제였다. 결국 둘다 새로 바꿔야한다. plaques는 정말 잘 안써서 괜찮을 줄 알았지만 아침마다 끓여마시던 커피가 문제였다. 그래서 요즘엔 filtré나 piston으로 마신다.

3 Boulots
돌아오기 전부터 세가지 급한일을 주렁주렁 달고 왔다. 방울마냥 소리가 날 정도였다. 내 일이 아닌 다른사람의 일이고 돈을 받는 일인데, 하나는 비디오 하나는 뎃상, 하나는 글 교정으로 내 3가지 주특기가 골고루였다. 어쩌다 보니 순서는 완성된 시기의 반대로 :
  1. Video : 돌아와서 어찌 할수 없게끔 바쁜 일들이 잠시 지나가고 작업을 하려고 했는데 맥북이 말을 듣지 않았다. 열흘인가 일주일 전쯤 맥북 OS를 업그레이드 하고 나서는 Microsoft Office가 안됐다. 워드를 자주 사용해서 바로 불편한 일이 생겼지만 Open Office가 있으니 대안이 있었다. 그런데 작업을 하려고 하는데 Premiere Pro가 열리지조차 않았다. 다행이 다른 것들은 됐지만 딱 이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되질 않으니 순간적으로 마비가 된 느낌이였다. 결론적으로는 하루를 온전히 컴퓨터와 혼자 씨름하고, Adobe는 CC 2017버전으로 새로 갈아엎었고, Microsoft Office 2016도 다시 받아서 재설치하여 모두 작동중이다. 그래서 하루 실컷 비디오 작업을 했다. 7분을 기준으로 4분반정도를 만들었고 오늘 많이 진행해야 한다. 내일모레 1차 확인을 하기로 했는데 무엇보다 비디오 업로드가 하루를 잡아먹을지도 모르니 미리해서 업로드를 시작해야한다.
  2. Dessin : 오빠 작업의 포스터. 하기로 한건 이미 좀 됐지만 한국에서 남은 시간동안은 작업할 시간이 도저히 없었다. 출국하는 날 아침 겨우 하나를 시작해서 공항에서 커피마시며 잠시 얘기를 했다. ‘정적이고 따듯한’ 느낌을 바랐는데 그게 내가 제일 잘하는 느낌이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주문을 받으면 참 접근이 달라서인지 쉽지 않다. 컴퓨터와 씨름하는 날 아무일도 못했다는 생각에 그림이라도 틈틈이 했는데 퀄리티들이 엉망이였다. 전이면 그런건 누군가에게 보여주지도 않고 바로 폐기했겠지만 우선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게 좋을것 같아서 오빠에게 보냈다. 3가지 정도로 압축됐고 종일 비디오 작업을 한날 시차를 처음으로 이겨내고 밤중에 첫번째 이미지를 그렸다. 겨우 A4이지만 펜이 종이에 닿을때마다 아주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그렸던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날 왠지 허전해보이는 배경에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고, 합리화를 해보려고 했지만 잘 모르겠었다. 그리고 두번째도 온갖 조심을 하며 그리다가 수업을 갔는데 그 와중에 오빠에게 결국 첫번째것으로 선택되었다. 결국 수업한 뒤에도 밤까지 쭉 그림을 마무리했다. 하루가 온전히 준구의 것이었다.
  3. Texte : 파리동생의 M1논문을 교정하는일을 한국에 있는 내내 계속 해왔다. 막바지라 분량이 크게 늘어서 비행기에서 반은 쉬고 반은 이일만 했는데도 딱 전체분량을 반만 본 상태였다. 이제 곧 제출이기에 하루 날잡고 나란히 앉아서 오후내내 교정을 했다. 거의 눈이 감기는 상태였다. 커피이외의 것을 마셔본적이 없는 Costa에서 무려 스무디 같은것을 마시며 집중했다. 그러다보니 만난 CONCLUSION. 오랜만에 만나놓고 별다른 대화도 못하고 일만하고 헤어졌다. 혹시나 교수의 ok를 못받을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도 통과했다. 곧 만나 축하를 하며 지난 못다한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Cours
수업은 계속된다. SH와 SW는 집으로 간다. 곧 DELF B1을 치뤄야하는 SH. 곧 고등학교 진학에 신경써야 하는 SW. 특히 후자는 이 아이 뿐 아니라 식구들 모두가 함께하고 있다. 다음주에는 진학상담에 같이 간다. 오늘은 그동안 나의 최장기 학생과 커피한잔을 하기로 했고 곧 졸업쇼가 있다. 학교자체를 들어가기 이전에 준비부터, 2년과정의 학교를 졸업하고 준석사과정 1년을 더하고 이제 공부가 마무리 되는 시기. 그 이후에 Stage도 있고, 취업도 있고 그렇겠지만 그건 또 그렇게 된다면 그렇게 될일. 모든 학생들과 오래오래 남을 진하고 좋은 관계가 되는것은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근데 그렇다면 좋은것 같다. 한가지, 수업을 더이상 늘리지는 않기로 했다. 지금의 학생들만 끝까지 봐주고, 주수입을 수업으로 하는건 끝내기로.

Musical Sequence #2
급한일들이 마무리되면 Musical Sequence작업을 시작해야한다. 아직은 회의 후에 따로 구상조차 못했다. 꽤 많은 분량이라 어떤식으로 진행해야 하는지 잘 정리해봐야겠다.

Voyages
거기에 더해 여기저기 다닐곳이 많다. 지금 확실한 리스트는 Paris, London, Genève, Annecy, 그리고 가능한 리스트는 Venice, Kassel, Bonay.

Résidence
레지던시는 공식사이트에 2017-2018프로그램 선정작가로 내 이름이 올라가있다. 그때 만난 이후로 의심할 바는 없었지만 일이라는게 언제든 엎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이일은 이렇게 확실시 된 것 같다. 내 스케쥴을 정리해 담당자에게 보냈고 곧 답이 올 예정이다.

AJAC
협회는 지금 point de suspension의 상태.

Administration
소득신고들은 마쳤고, 내야할 돈들도 냈고, 이제 체류증 남았다.

일복은 계속되니 다행이다. 실감하고 있지만 체력 및 건강 회복이 따라야 한다. 더불어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계속 갈수 있다.
하나씩 하나씩. 유사화효가행.

20170202

La porte au numéro 5.

Photo credit : JiSun LEE / 2016.11.22 / Paris
Promenade
오랜만에 조금 걸었다. 회색 하늘, 비가 오는지 아닌지 모르겠는 축축한 공기, 약간 차가운 촉감, 어두운 듯 남아있는 낮. 익숙한 음악들. 좋다. 사진찍고 싶은게 좀 있었는데 눈에만 담고 싶기도 했다. 비둘기 같은 사람들 사이로 까마귀 같은 옷차림. 검은 머리, 검은 코트, 검은 신발과 검은 가방.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른다. 나는 오고간다. 가고 온다. 다음을 기약하고 지금을 뒤로한다.

Noisette
요즘 아침엔 뜨거운 café à l'italienne 반 조금 부드러운 café filtre반이다. 그리고 조용한 까페, 좋은 사람 혹은 잔잔한 음악, 혹은 편한 듯 무관심한 분위기에서 마시는 café noisette. Une noisette de lait dans le café comme une noisette de sérénité dans la journée de pêle-mêle. 
평범하고 평범한 Noisette은 까페마다 다양하게 서빙된다.
  • 에스프레소에 찬우유 두방울 넣어서
  •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우유 두방울 넣어서
  • 에스프레소에 따듯한 우유 거품 얹어서
  • 에스프레소랑 찬우유 작은 주전자에 담아서
  • 에스프레소랑 뜨거운 우유 작은 주전자에 담아서
  • 에스프레소에 따듯한 우유거품 정성스레 담아서 하트까지 그려서
물론 모두 좋다.

Moteur
몇가지 내가 하지 않으려는 말이 있다. 별 생각 없었다가 누군가 얘기를 해서 그렇게 인식이 된 표현도 있고, 언젠가 누구에게 그런 말을 들어서 상처를 받아서 그런것도 있다. 그냥 혼자 정해놓은 말도 있고. 그 중 하나가 바쁘다는 말이다. 근데 요즘 이 말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집적적이든 간접적이든 꽤 하는것 같다. 할일이 물론 많다. 할일이 많다는 것도 비슷한 말이다. 내 agenda에는 하루하루 할일들이 적혀있다. 한 일에는 줄이 그어지거나 croix 혹은 ok가 표시된다. 못한 일은 그대로 남아있는다. 하루의 분량을 마치면 뿌듯하고 아니어도 어쩔수는 없다. 어두운 아침에 눈을 떠서 잠시 내가 어딘지 떠올리고 하루를 시작하면 그대로 모터는 멈추지 않는다. 책상에 앉아서, 까페에서, 학생 집에서, 이외의 이런저런 공간에서 모터는 크고 작은 진동을 한다. 그리고 비로소 눈동자가 반이 덮히게 눈꺼풀이 덮히고 더이상 의자라는 곳이 싫어지면 침대로 향한다. 그 중에 멍한 시간, 음악 듣는 시간, 커피 맛 잠시 음미하는 시간, 하늘 보는 시간, 지하철 타는 시간, 맥주 한모금 들이키는 시간, 그런 틈의 동안 이따금씩 충전한다. 

Interview
작년 이맘때는 한국에서 개인전을 하고, 이제 곧 마무리가 되어가는 시기였다. 한달에 하나씩 글을 써서 올리던 CultureM과의 비디오 인터뷰를 했고, 내 얼굴이 꼼꼼히도 숨겨졌던 SNS나 사이트 등에 내 모습이 드러났다. 하나도 별거 아닌 일이지만 나에게는 문 하나를 활짝 열어버린 일이었다. 감사한 일이었고, 좋은 자료가 되었다. 그전에도 인터뷰라는것을 했었지만 면접 혹은 시험을 제외한다면 별거 없었다. Stigmart인가 Videofocus라는 웹상의 잡지에 영어로 인터뷰가 게재되었었다. 실제로 이루어진 일이기는 한데 마치 꿈인 듯 실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영상 인터뷰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 게다가 개인적으로 정신이 돌아있는 상태에 YTN인터뷰를 하게됐다. 마치 나를 작가로서 소개하는 그런 취재인줄 알았는데 실은 그보다는 프랑스 예술가 보장 제도에 관한 취재에 내가 témoignage정도를 한 일이었다. 그래도 YTN이라는 큰 방송국의 파장력이 그동안 내가 작게나마 키워가던 communication의 범위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낀 일이었다. 딱 한번 얼굴본 뉴욕에 사는 친구의 친구가 나를 TV에서 우연히 보고 연락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곧이어 협회관련으로 프랑스 한인지에 작게 기사가 실렸다. 뭔가 자꾸만 보도되는 일들을 겪었다. 희안하게도 너무나 별거 아닌듯이 일들이 지나갔고 나도 대수롭지 않았다. 
올해, 아주 갑작스럽게 찾아온 전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연 이후로 조금 연달아서 몇번의 개인전을 했다. 이정도면 괜찮았다 싶었던 것도 있었고, 아주 망한것도 있었다. 체력이나 작업적으로 무리인 듯 해서 잠시 개인전은 쉬어야 겠다는 생각도 감히 했다. 그래도 올해에는 한국과 프랑스에서 또 개인전을 한번씩은 해야지 하고 어렴풋이 염두해뒀었다. 아무래도 공간을 구하는게 한국이 조금 더 쉽다보니 프랑스는 방법도 모른채로 있었는데 정말 우연하게도, 그리고 불안한 듯 시기적절하게도 전시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지나보니 어떠한 일들이 지나가 있다. 오프닝의 개념이 이곳과는 조금 다른 한국. 매번 지인들을 최대한 초대해도 뭔가 아쉽고 섭섭하게, 한산하게 오프닝이 지나갔었다. 한두명이 오면 갈때쯤 또 한두명이 와서 사람들을 연달아 맞이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이번. 지인도 다 떠나고 없구나 싶은 이곳. 문화원이라는 지위와 몇가지 또 우연스러운 인연으로 나름 오프닝다운 오프닝이 지나갔다. 너무나 반갑고 고맙던 지인들의 등장. 보다 더 힘이 되는게 없었다. 그리고 파리지성과의 인터뷰까지. 전시와 작품, 그리고 나의 이야기까지 하나의 페이지의 고이 담겼다. 이로써 전시를 관련한 공식적인 전시일정이 끝났다.

10 jours

무서운 10일. 열흘. 앞으로 전시가 열흘은 더 남았다. 열흘하면 아직도 먼저 떠오르는 기억. 그 어떤일도 지나갈 수 있는 기간. 하지만 내가 바라는 대로, 내가 원하는 시기에 그렇지는 않다. 10일. 또 올까 싶으면서도 또 오지 않았으면 싶다. 한국에 가기전 남은 이 기간동안 pleinement plein하기를 바란다. De quoi? On sait jamais.

20161127

La porte au numéro 4.

Photo credit : JiSun LEE / 2016.11.11 / Paris

이사
9년의 이 생활동안 한국의 부모님 집도 프랑스의 나의 집도 자주 이사를 하게됐다.

태어난곳에서 오래도록 살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쯤 휩쓸리는 한국의 여러가지 파도와 함께 그저 한곳에 머물것 같던 우리가족도 상황에 쫓기거나 조금이나마 더 나은 조건이라고 여겨지는 곳으로 옮겨다니기 시작했다. 그저 당연한 번호로 여겨지던 103번지. 5355라는 집번호 뒷자리. 동네 길을 넓힌다고 집을 두부잘라내듯이 잘라내서 새로 개조가 되었을 때나 2층에 이모네나 가장 친한 친구네가 들어왔을 때, 주변 집들이 제각기 다른 모양의 빌라로 바뀔 때. 그럴때도 난 잘 몰랐고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고 지나갔다. 그리고 내 인생에 처음으로 이사. 이사를 옮겨놓고 아빠차를 타고 새집으로 가던 때의 분위기와 느낌이 그대로 기억난다. 오르막길을 따라 계속해서 운전했고, 아직 이삿짐이 정리되지 않은 어수선한 집에서 내 방이라는 곳에 잠시 들어가서의 그 느낌은 정말 싫었다. 괜히 짜증이 났고 울고 싶었고 정이 안갔다. 그 이후로 우리집은 계속해서 이사를 했다. 유학을 떠난 후에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한국에 2년에 한번정도 갔기 때문에 한국에 갈때마다 새로운 집으로 가게됐다. 서울의 동쪽 끝, 서쪽 끝. 도착한 날은 아빠가 동네를 조금 설명해주고 서울가는 교통편을 알려주는게 당연한 첫번째 일과였다. 집에 가도 집이 아니였고, 광화문이나 나오면 한국에 왔구나 싶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도 이사를 많이 했다. 비로소 지금의 집에서는 여러해를 보내고 있다.

Grenoble에서 홈스테이를 하다가 집에 공사를 하는 바람에 그 엄마네로 첫번째 이사. 짐도 별로 없었고 집주인의 차로 옮겨서 쉬웠다. 그저 잘 지낼 줄 알았지만 나의 조용함을 답답해하던 조금 히스테릭한 집주인 엄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두번째 이사. 비오는 날 오빠의 까만 후드티를 입고 버스를 타고 여러번 왕복해가면서 이사했다. 처음 혼자 이사해봤고 처음 진정으로 처량해봤는데 동시에 이집을 나와야만 한다는 의지가 너무 강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혼자살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몇달간 교환학생을 가는 한 프랑스 여학생의 집에 sous-location. 요리도 하고, 전 집주인이 허락하지 않아서 못했던 친구 초대도 하고, 샤워도 내 마음대로 하고, 집에 인터넷도 되고.. 좋았다. 

그리고 Grenoble에서의 어학수업을 마치고 여느때처럼 매달 마지막날 수업 후 선생님과 반친구들이 모여 피크닉. 그날 돌아와서 조금더 깊은 정을 나눴던 중국친구 W가 떠나기 전 청소를 도와줬다. 노인과 같이 살던 친구라 참 살림을 잘했다. 지금은 노인의 죽음 후에 여러가지 우울증세가 심해져서 중국으로 돌아간지 벌써 5-6년 되었을 친구. 연락은 끊겼다. 다음날 아침 이불빨래까지 해놓고 새 보금자리 Dijon으로 세번째 이사. 그 전에 인터넷 직거래 사이트에서 집을 보고 당일 기차로 방문을 하고 계약도 했던 자그마한 집. SNCF의 짐 서비스로 큰 캐리어 두개를 보내고, 나는 당일에 캐리어 두개와, 큰 짐 하나와, 매는 가방 하나, 이젤, 아트백 뭐 그런것들을 한꺼번에 지고 기차를 탔다. 지금 생각해도 Dijon 기차역에서 그때 그 집까지 빠르면 15분이면 가는 길을 짐이 너무 무거워서 1시간 반에 걸쳐 갔다. 더운 여름이였다.

처음으로 Chez 누구가 아닌 내 이름이 붙은 집. 작지만 창가로 보이는 도시도 예쁘고 건물의 입구도 꽤 넓찍했다. 그런데 1년을 살다보니 1학년 수업중에 많았던 뎃상이 자꾸만 늘어가고, 보관할 곳이 점점 더 없어졌다. 지난 이사의 기억들이 있기때문에 주변으로 집을 찾았다. 그리고 네번째 이사. 이사를 할때는 무엇보다 3-4층에서 짐을 내리고 올리는게 가장 힘들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들에 살고 유럽의 평균적인 건물의 계단은 둥글둥글 나선형이거나 말이안되게 좁거나 해서 장을 조금 많이봐도 쉽지않다. 그런데 캐리어를 30킬로정도 채워서 하루에 몇번씩 며칠을 오르내리다 보면 내릴땐 캐리어를 거의 던지게 된다. 나는 옷이나 물건을 사면 그게 아주 싸구려여도 꽤 오래 얌전히 쓰는 편인데 캐리어는 그래서 유학생활동안 자주 바꿀수 밖에 없었다. 내 5번째 집은 무려 2 pièces. 내 유학생활 중 가장 큰 집이였다. 여기 사는 동안 엄마도 한번 다녀가고, 새해에는 친구들을 꽤 초대하기도 하고, 벽에 큰 종이를 붙여놓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2년을 살았다. 그리고 떠나게됐다.

이사할때마다 짐을 버려대고 나름 노하우가 생겼다고 해도 맨손으로 하는 이사는 내 체력의 가장 큰 한계를 겪게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주변으로 집을 찾았다. 물론 방은 하나로 조금 더 싼곳으로. 그래서 다섯번째 이사. 이곳은 지금까지 중 가장 작은 곳이였다. 친구도 초대하지 않았고 큰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곳에 사는 동안 비디오를 시작했다. 작업 과정이나 그 세계가 매력적인게 1번이였지만 종이나 maquette같은 작품에 대한 짐이 생기지 않는다는것도 당시 내가 비디오에 푹 빠질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였던것 같다. 이곳에서도 2년을 살았다. 다시 살아볼 수 있을까 싶은 곳. 아마 살 수는 있을꺼다. 그래도 이곳에서 많은 작업과 일들이 지나갔으니까.

여섯번째 이사는 Paris로의 이사. Grenoble에서 Dijon으로 갈때도 그랬지만 Dijon에서 Paris로 올때도 조금의 미련도 없이 떠났다. 마지막 석사 학위 시험을 보고 이틀뒤부터. 당시 Sy언니의 남편이 많이 도와주셨고, 그분이 지금의 이 집을 구해주시기도 했다. 꼭대기라고 해도 겨우 4-5층이지만 늘 그런곳에서 작은 창으로 하늘을 빤히 바라보는게 익숙하던 나에게 이곳은 RDC. 그거 하나만 빼면 모든게 다 마음에 들었다. 아 물론 월세는 Dijon의 2-3배.

그 이후로 3년반, 가장 오랜시간동안 한집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심지어 내년부터는 두집살림을 시작하려고 한다. 충분히 감당해 낼지 아님 결국 하나를 정리하게 될지, 어쩌면 양쪽 다 버리게 될지. 살아봐야 안다. 살아봐야 한다.


유물
첫번째 집에 살기 시작했을 때, 처음 장을 보러가서 사온 물건 중에서 지금까지 계속 같이하고 있는 물건이 두개가 있다. 그냥 있는것이 아니라 여전히 일상에서 아주 자주 사용하는 아이템 : 

1) cafetière italienne à 2 personnes
가장 뜨겁고 진한 커피를 쉽게 만들 수 있다. 기본스타일의 모양, 가장 작은 사이즈. 쇳덩이이기 때문에 망가질일이 없다. 이사할때 깨질 일도 없고, 전기 스토브이다보니 그을릴일도 없다. 가운데 필터쪽 고무가 낡긴 했다. 내년중에 한국에도 같은걸 하나 사다놓을까 한다.

2) sèche-cheveux

프랑스에서 전자제품을 파는 두 양대산맥 Fnac과 Darty. 그중 거리상 가까웠던 Darty를 먼저 가보게 됐다. 가장 싼것중에 두번째 것으로 산 헤어드라이기. 지금까지도 매일같이 쓴다. 대신 어디 갈때는 왠만해서 드라이기가 있거나 그냥 없이 말려도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지고 다니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크고 화려한 전자제품들을 쓰다가 오면 뭔가 작고 초라한 바람을 낸다. 몇일 지나면 그런느낌없이 역할을 잘 해내기만 한다. 내가 가진 많은것들이 그렇다. 나의 échelle에 맞는것들. 

20161113

La porte au numéro 3

Photo credit : JiSun LEE / 2016.10.30 / Paris

3 repas par jour
프랑스에 처음와서 Grenoble L집 홈스테이로 시작했기 때문에 애초에 프랑스식으로 먹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당시에도 친구들에 비해서 잘 먹지 않았었는데 어학기간동안 먹는양이 2-3배로 늘어났다. 집주인과 같이 아침을 먹고, 어학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집에서 혼자 저녁을 먹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세끼를 먹긴했지만 아침은 겨우 먹고, 점심급식은 반찬만 먹고는 밥을 거의 다 버렸었고, 저녁은 학원수업을 앞뒤로 길거리 음식이나 빵같은 걸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Grenoble에 있는동안 여러가지 프랑스 음식을 가장 많이 맛봤던것 같다.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을 모방하고 주변 것들을 받아들이려고 온몸이 세팅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아침만 해도 집주인 L을 따라서 시리얼에 사과하나까지 먹었는데, 이때 처음 달지만 않은 더 다양한 곡물이 들어간 시리얼에 우유를 데워서 말아먹는걸 해봤다. 이게무슨 죽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사과만 해도 하나씩 들고다니면서 베어먹는걸 해본 적이 없었는데 수업 쉬는시간에 간식으로 먹거나 길거리에서 먹는걸 보고는 나도 꽤 많이 들고 다녀봤다. 나름대로 좋은 습관인데 지금은 사라졌다. 냉장고에 사놓은 사과 2개도 과연 썩기 전에 먹을지 모르겠다. 
점심은 어학원 안에있는 cafétéria에서 먹곤 했다. 처음에는 여기식 바게트 샌드위치가 너무 길고 커서 반도 다 못먹다가 점점 하나를 다 먹게되고 먹성좋은 서양애들 따라서 디저트까지도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아마 또 반도 못먹겠지만. 그땐 바게트보다 특히 별거 안들어가 있지만 따듯하게 눌러주는 panini를 많이 먹었던 것 같다.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시간이 널널했던 어학기간. 이 시간 동안에는 집에가서 저녁도 이런저런 요리를 해가면서 잘 먹었다. 사람들도 집에 초대해서 요리해주고. 반 친구들과 피크닉하면 요리해가고. 하루가 먹는걸로 가득하던 시기. 프랑스 친구를 사귀려면 먹는 얘기를 하라는 말이 있다. 대화할 내용도 끊임이 없고 즐거운 분위기가 이어진다. 
그렇게 가장 짧은 시간을 보냈지만 알찼던 Grenoble 생활. 그 이후로 다시 간적은 한번도 없다. 언제라도 가게되면 반가울 곳. 
그리고 많은 식습관의 변화를 겪고 벌써 5년정도 하루에 한끼를 먹는게 습관화되어 버렸다. 습관이 되니 식사시간에 맞춰 배가 고프지도 않고, 나름대로 아침이나 점심을 먹으려고 해도 때를 놓치는 일이 너무 많다. 오히려 두끼를 먹게되면 더부룩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건강에 좋고 안좋고 얘기가 많지만 모든 régime은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고, 나의 일정상 가장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요즘은 repas라고 하는것 이전에 goûter같은거라도 챙기려고 한다. 어쩌다보니 더 빠지면 안된다는 사명감이 생겼지만 더 찌는것도 그다지 반갑지 않다. 한국에 가면 좀 빠지고 파리에 오면 조금 돌아오고. 다행이 잘 유지중이다. 

Croissant & Pain aux raisins
프랑스는 확실히 boulangerie와 pâtisserie의 나라이다. 우리말로 하자면 그냥 빵의 나라. 고등학교 제2외국어 불어시간에 알게됐는데 빵은 불어로도 pain. 아마도 불어단어에서 온 말인것 같다. 
한국에서도 여러가지 한국식의 빵을 먹고 자란다. 파리바게트나 뚜레쥬르에 가면 조금더 외국스러운 빵들도 사먹고, 마트나 편의점에 파는건 아주 가끔, 엄마가 동네빵집에서 사다놓은 것들은 배가 고프던 고프지 않던 손길이 갔다. 그러다가 이곳에 와서 마트보다도 많이 보이던 빵집들. 이사를 하면 새 집 주변으로 장볼 곳, 빵집, 빨래방. 이 세가지를 먼저 둘러봤다. 그리고 특히 Grenoble에 사는 기간에는 빵집 뿐만 아니라 마트에서 파는 비스킷, 시리얼만 해도 한번 먹어본 것 말고 늘 새로운걸 시도 했었다.
Dijon에 살때에는 점차 생활에 익숙해지기도 하고, 학교생활이 내 머리의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에 프랑스 자체에 대한 시도들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빵집들도 내 동선 안에 있는 곳들 위주로 다녔다. 특히 단골이 된 곳이 세군데가 있는데 한 곳은 baguette viennoise가 너무 부드럽고 엄청나게 큰 pain aux raisins을 파는 이웃 할머니집 같은 곳. 집 뒷편인데 뒤늦게 알게된 후 가끔 가다가 어느날 문이 닫혔다. 한참뒤에 다시 열어서 들러보니 젊은 여자가 있었는데 원래 하시던 부부가 은퇴하시고 그 아들이 물려받았다고 했다. 다행이 돌아가신건 아니였다. 아시아 인이 많은 동네는 아니여서 기억을 했는지 어느날은 croissant을 샀는데 macaron을 하나 먹어보라고 주기도 했다. 두번째가 Dijon 살면서 가장 많이 들른 곳. 학교에서 집에 가는 한 가운데 있어서 더 그랬다. 여기서는 baguette, baguette viennoise au chocolat blanc, pain aux raisins, sablé au citron을 주로 샀었다. 특히 5학년때는 거의 매일 여기서 산 빵으로만 저녁을 먹는날이 많았다. 새침하게 생겼지만 친절하던 여직원은 얼굴이 꽤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은 sablé를 전문으로 파는 곳. 이곳 sablé는 정말 엄청나다.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부스러지는 퍽퍽한 sablé가 아니라 촉촉하고 질감과 향이 짙은. 물론 가격도 두배 이상이다. 근데 그럴 가치가 있다. 종류만해도 20가지는 되는 것 같다. 이때 처음 beurre salé라는 것, 그것이 단맛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게됐다. 가끔 판매용으로 만들고 남은 반죽들을 조그맣게 구워서 작은봉지에 묶어 떨이로 팔기도 했다. 혹시나 파리에도 이런곳이 있을까 찾아봤지만 없다. 그냥 그곳은 유일한 곳이다. 
지금 사는 파리집 주변에도 여러군데의 빵집이 있다. 프랑스 빵집들은 이름이 잘 없다. 있는 곳도 있지만 그냥 boulangerie라고만 적혀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특징으로 대략 기억을 하게된다. 집 주변도 마찬가지라 croissant이 맛있는 곳 (가장 가까운 곳은 Manon어쩌고 라는 이름이 있는데 빵집들 중에 이 이름을 쓰는 곳이 좀 있다. 아마 유명한 장인 이름 중 하나인가보다), 월요일에 여는 곳, 일요일에 여는 곳, 다른곳보다 가격이 싼곳, lunette를 가끔 사먹는곳, sablé coeur를 가끔 사먹는 곳.. 뭐 이런식이다. 우리나라는 어느 식당이나 쌀밥, 김치가 맛있어야 실력이 있다고 여기듯이 여기도 baguette와 croissant이 기본이다. 나는 요즘의 식습관으로는 baguette를 먹을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croissant을 먼저 맛보고, 그 다음이 pain aux raisins이다. 요즘같아선 아예 새로운 곳을 시도할일도 별로 없다. 아무튼 viennoiserie 기본종류들 중에 나는 초콜릿이 뭍은 밀가루 음식을 안좋아해서 pain au chocolat는 직접 사본적이 없다. 그냥 맛이 별로 없다.

잠
어제도 그제도 글을 쓰고 싶으면서 글이 잘 안써졌다. 글을 쓴다기보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근데 어제는 할일들을 다 뒤로하고 일찍이 잠이 들어버렸다. 당연히 새벽 1시쯤 눈이 번뜩 떠졌다. 핸드폰으로 적어서 맞춤법은 엉망이 되도 가끔 잠결에 좋은 글을 쓰기도 한다. 지난밤에는 메세지만 조금 하고는 다시 잠들었다. 
오늘 아침도 여느때와 비슷하게 시작했다. 대신 오늘은 아침일찍 저녁에 먹을 빵을 사다놨다. 이런일도 별로 없는데 오늘은 그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빵을 사들고 오는 길에 쓰고싶은 글이 생겨버려서 오늘의 메모가 시작됐다. 
친구 Hr이가 사랑하던 옆집의 croissant. 오전에 집에서 보내면 커피랑 같이 먹었겠지만 오늘은 아침 커피약속이 있다. 엊그제는 Ms이모님과 café noisette, 어제는 Hw수업할 때 커피를 못마셔서 집에 돌아와서 늦은 첫 커피. 오늘은 Jh작가님의 소개로 알게된 Yr씨+친구분들과 모닝커피. 그리고 이어서 일요일의 리듬. Sh수업과 Jh수업. 
잠을 많이 자고 일어나면 힘이 조금 더 있다. 커피는 우선 맛이좋고, 아침이면 떠오르는 습관이 있지만, 몸에 직접적인 효과가 거의 없다. 에스프레소 마시고도 잔다. 그래도 커피는 정신적으로 안정을 준다. 그에 비해 잠은 아직까지 가장 큰 치유의 수단이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영향력이 크다. 매일 잠을 잔다는건 때때로 참 비효율적으로 느껴진다. 그래도 자고 일어나면 매일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기차나 비행기에서의 긴 시간도 잠을 자서 순식간으로 바꿀수도 있지만 오히려 잠을 잘 못자기 때문에 그 여정을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바꿀수 있다. 잠은 자서, 안 자서, 잘 자서, 못 자서 그 나름대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