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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2

Most Soundings These Days

Photo credit : JiSun LEE / 2017.02.02 / Paris

Most Deeply Sounding List of 2017.02 :

  • Adele - Turning Tables
  • Aquilo - Silhouette, Human
  • Big Mama - Calling
  • Bon Iver - 22, A Million
  • Bonobo - All In Forms, Grains, No Reason
  • Camille - Winter’s Child
  • Coldplay - Everglow
  • Copeland - You love to sing
  • Corinne Bailey Rae - Butterfly
  • D’Sound - People Are People
  • Damien Rice - Volcano, My Favourite Faded Fantasy
  • DJ Okawari - Flower Dance
  • E Sens - Writer’s Block
  • Ed Sheeran - Afire Love, I See Fire
  • The Fray - Happiness
  • FreeTEMPO - Track7,8,11
  • Jason Mraz - Plane
  • Johny Jewel - Home
  • Nell -  오후와의 대화
  • Nomak - Rebirth
  • Park Hyo Shin - Breath, Beautiful Tomorrow
  • Philip Glass - The hours
  • Re:plus - Time Goes By, A Fall and Rebirth
  • Roller Coaster - 비행기
  • Sentimental Scenery - Lunar Eclipse
  • Sigur Rós - Isjaki, Varoeldur
  • SOHN - Falling
  • Steve Reich - Proverb
  • Swan Dive - Goodbye September
  • Tablo -
  • Télépopmusik - Don’t Look Back, Anyway, Close
  • Urban Zakapa - 떠나는 사람, 남겨진 사람
  • Windy City - Countryman
  • The xx - Performance, Shelter
  • Yann Tiersen - Porz Goret, Esther
  • Yiruma - Passing By
  • Yoko Kanno - Strangers
  • Zero 7 - Home, Passing By, When It Falls
  • Kim Yoon Ah - Going Home, 얼음공주
  • Noel - 잊혀진다는거
  • Lee Sora - Siren,
  • Jaurim - 이카루스
  • Jang Boem Jun - 떠나야만해

20170202

La porte au numéro 5.

Photo credit : JiSun LEE / 2016.11.22 / Paris
Promenade
오랜만에 조금 걸었다. 회색 하늘, 비가 오는지 아닌지 모르겠는 축축한 공기, 약간 차가운 촉감, 어두운 남아있는 . 익숙한 음악들. 좋다. 사진찍고 싶은게 있었는데 눈에만 담고 싶기도 했다. 비둘기 같은 사람들 사이로 까마귀 같은 옷차림. 검은 머리, 검은 코트, 검은 신발과 검은 가방.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른다. 나는 오고간다. 가고 온다. 다음을 기약하고 지금을 뒤로한다.

Noisette
요즘 아침엔 뜨거운 café à l'italienne 조금 부드러운 café filtre반이다. 그리고 조용한 까페, 좋은 사람 혹은 잔잔한 음악, 혹은 편한 무관심한 분위기에서 마시는 café noisette. Une noisette de lait dans le café comme une noisette de sérénité dans la journée de pêle-mêle. 
평범하고 평범한 Noisette 까페마다 다양하게 서빙된다.
  • 에스프레소에 찬우유 두방울 넣어서
  •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우유 두방울 넣어서
  • 에스프레소에 따듯한 우유 거품 얹어서
  • 에스프레소랑 찬우유 작은 주전자에 담아서
  • 에스프레소랑 뜨거운 우유 작은 주전자에 담아서
  • 에스프레소에 따듯한 우유거품 정성스레 담아서 하트까지 그려서
물론 모두 좋다.

Moteur
몇가지 내가 하지 않으려는 말이 있다. 생각 없었다가 누군가 얘기를 해서 그렇게 인식이 표현도 있고, 언젠가 누구에게 그런 말을 들어서 상처를 받아서 그런것도 있다. 그냥 혼자 정해놓은 말도 있고. 하나가 바쁘다는 말이다. 근데 요즘 말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집적적이든 간접적이든 하는것 같다. 할일이 물론 많다. 할일이 많다는 것도 비슷한 말이다. agenda에는 하루하루 할일들이 적혀있다. 일에는 줄이 그어지거나 croix 혹은 ok 표시된다. 못한 일은 그대로 남아있는다. 하루의 분량을 마치면 뿌듯하고 아니어도 어쩔수는 없다. 어두운 아침에 눈을 떠서 잠시 내가 어딘지 떠올리고 하루를 시작하면 그대로 모터는 멈추지 않는다. 책상에 앉아서, 까페에서, 학생 집에서, 이외의 이런저런 공간에서 모터는 크고 작은 진동을 한다. 그리고 비로소 눈동자가 반이 덮히게 눈꺼풀이 덮히고 더이상 의자라는 곳이 싫어지면 침대로 향한다. 중에 멍한 시간, 음악 듣는 시간, 커피 잠시 음미하는 시간, 하늘 보는 시간, 지하철 타는 시간, 맥주 한모금 들이키는 시간, 그런 틈의 동안 이따금씩 충전한다

Interview
작년 이맘때는 한국에서 개인전을 하고, 이제 마무리가 되어가는 시기였다. 한달에 하나씩 글을 써서 올리던 CultureM과의 비디오 인터뷰를 했고, 얼굴이 꼼꼼히도 숨겨졌던 SNS 사이트 등에 모습이 드러났다. 하나도 별거 아닌 일이지만 나에게는 하나를 활짝 열어버린 일이었다. 감사한 일이었고, 좋은 자료가 되었다. 그전에도 인터뷰라는것을 했었지만 면접 혹은 시험을 제외한다면 별거 없었다. Stigmart인가 Videofocus라는 웹상의 잡지에 영어로 인터뷰가 게재되었었다. 실제로 이루어진 일이기는 한데 마치 꿈인 실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영상 인터뷰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 게다가 개인적으로 정신이 돌아있는 상태에 YTN인터뷰를 하게됐다. 마치 나를 작가로서 소개하는 그런 취재인줄 알았는데 실은 그보다는 프랑스 예술가 보장 제도에 관한 취재에 내가 témoignage정도를 일이었다. 그래도 YTN이라는 방송국의 파장력이 그동안 내가 작게나마 키워가던 communication 범위와는 많이 다르다는 느낀 일이었다. 한번 얼굴본 뉴욕에 사는 친구의 친구가 나를 TV에서 우연히 보고 연락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곧이어 협회관련으로 프랑스 한인지에 작게 기사가 실렸다. 뭔가 자꾸만 보도되는 일들을 겪었다. 희안하게도 너무나 별거 아닌듯이 일들이 지나갔고 나도 대수롭지 않았다
올해, 아주 갑작스럽게 찾아온 전시. 처음으로 개인전을 이후로 조금 연달아서 몇번의 개인전을 했다. 이정도면 괜찮았다 싶었던 것도 있었고, 아주 망한것도 있었다. 체력이나 작업적으로 무리인 해서 잠시 개인전은 쉬어야 겠다는 생각도 감히 했다. 그래도 올해에는 한국과 프랑스에서 개인전을 한번씩은 해야지 하고 어렴풋이 염두해뒀었다. 아무래도 공간을 구하는게 한국이 조금 쉽다보니 프랑스는 방법도 모른채로 있었는데 정말 우연하게도, 그리고 불안한 시기적절하게도 전시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지나보니 어떠한 일들이 지나가 있다. 오프닝의 개념이 이곳과는 조금 다른 한국. 매번 지인들을 최대한 초대해도 뭔가 아쉽고 섭섭하게, 한산하게 오프닝이 지나갔었다. 한두명이 오면 갈때쯤 한두명이 와서 사람들을 연달아 맞이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이번. 지인도 떠나고 없구나 싶은 이곳. 문화원이라는 지위와 몇가지 우연스러운 인연으로 나름 오프닝다운 오프닝이 지나갔다. 너무나 반갑고 고맙던 지인들의 등장. 보다 힘이 되는게 없었다. 그리고 파리지성과의 인터뷰까지. 전시와 작품, 그리고 나의 이야기까지 하나의 페이지의 고이 담겼다. 이로써 전시를 관련한 공식적인 전시일정이 끝났다.

10 jours

무서운 10. 열흘. 앞으로 전시가 열흘은 남았다. 열흘하면 아직도 먼저 떠오르는 기억. 어떤일도 지나갈 있는 기간. 하지만 내가 바라는 대로, 내가 원하는 시기에 그렇지는 않다. 10. 올까 싶으면서도 오지 않았으면 싶다. 한국에 가기전 남은 기간동안 pleinement plein하기를 바란다. De quoi? On sait jamais.

20161127

La porte au numéro 4.

Photo credit : JiSun LEE / 2016.11.11 / Paris

이사
9년의 생활동안 한국의 부모님 집도 프랑스의 나의 집도 자주 이사를 하게됐다.

태어난곳에서 오래도록 살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휩쓸리는 한국의 여러가지 파도와 함께 그저 한곳에 머물것 같던 우리가족도 상황에 쫓기거나 조금이나마 나은 조건이라고 여겨지는 곳으로 옮겨다니기 시작했다. 그저 당연한 번호로 여겨지던 103번지. 5355라는 집번호 뒷자리. 동네 길을 넓힌다고 집을 두부잘라내듯이 잘라내서 새로 개조가 되었을 때나 2층에 이모네나 가장 친한 친구네가 들어왔을 , 주변 집들이 제각기 다른 모양의 빌라로 바뀔 . 그럴때도 몰랐고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고 지나갔다. 그리고 인생에 처음으로 이사. 이사를 옮겨놓고 아빠차를 타고 새집으로 가던 때의 분위기와 느낌이 그대로 기억난다. 오르막길을 따라 계속해서 운전했고, 아직 이삿짐이 정리되지 않은 어수선한 집에서 방이라는 곳에 잠시 들어가서의 느낌은 정말 싫었다. 괜히 짜증이 났고 울고 싶었고 정이 안갔다. 이후로 우리집은 계속해서 이사를 했다. 유학을 떠난 후에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한국에 2년에 한번정도 갔기 때문에 한국에 갈때마다 새로운 집으로 가게됐다. 서울의 동쪽 , 서쪽 . 도착한 날은 아빠가 동네를 조금 설명해주고 서울가는 교통편을 알려주는게 당연한 첫번째 일과였다. 집에 가도 집이 아니였고, 광화문이나 나오면 한국에 왔구나 싶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도 이사를 많이 했다. 비로소 지금의 집에서는 여러해를 보내고 있다.

Grenoble에서 홈스테이를 하다가 집에 공사를 하는 바람에 엄마네로 첫번째 이사. 짐도 별로 없었고 집주인의 차로 옮겨서 쉬웠다. 그저 지낼 알았지만 나의 조용함을 답답해하던 조금 히스테릭한 집주인 엄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두번째 이사. 비오는 오빠의 까만 후드티를 입고 버스를 타고 여러번 왕복해가면서 이사했다. 처음 혼자 이사해봤고 처음 진정으로 처량해봤는데 동시에 이집을 나와야만 한다는 의지가 너무 강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혼자살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몇달간 교환학생을 가는 프랑스 여학생의 집에 sous-location. 요리도 하고, 집주인이 허락하지 않아서 못했던 친구 초대도 하고, 샤워도 마음대로 하고, 집에 인터넷도 되고.. 좋았다

그리고 Grenoble에서의 어학수업을 마치고 여느때처럼 매달 마지막날 수업 선생님과 반친구들이 모여 피크닉. 그날 돌아와서 조금더 깊은 정을 나눴던 중국친구 W 떠나기 청소를 도와줬다. 노인과 같이 살던 친구라 살림을 잘했다. 지금은 노인의 죽음 후에 여러가지 우울증세가 심해져서 중국으로 돌아간지 벌써 5-6 되었을 친구. 연락은 끊겼다. 다음날 아침 이불빨래까지 해놓고 보금자리 Dijon으로 세번째 이사. 전에 인터넷 직거래 사이트에서 집을 보고 당일 기차로 방문을 하고 계약도 했던 자그마한 . SNCF 서비스로 캐리어 두개를 보내고, 나는 당일에 캐리어 두개와, 하나와, 매는 가방 하나, 이젤, 아트백 그런것들을 한꺼번에 지고 기차를 탔다. 지금 생각해도 Dijon 기차역에서 그때 집까지 빠르면 15분이면 가는 길을 짐이 너무 무거워서 1시간 반에 걸쳐 갔다. 더운 여름이였다.

처음으로 Chez 누구가 아닌 이름이 붙은 . 작지만 창가로 보이는 도시도 예쁘고 건물의 입구도 넓찍했다. 그런데 1년을 살다보니 1학년 수업중에 많았던 뎃상이 자꾸만 늘어가고, 보관할 곳이 점점 없어졌다. 지난 이사의 기억들이 있기때문에 주변으로 집을 찾았다. 그리고 네번째 이사. 이사를 할때는 무엇보다 3-4층에서 짐을 내리고 올리는게 가장 힘들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들에 살고 유럽의 평균적인 건물의 계단은 둥글둥글 나선형이거나 말이안되게 좁거나 해서 장을 조금 많이봐도 쉽지않다. 그런데 캐리어를 30킬로정도 채워서 하루에 몇번씩 며칠을 오르내리다 보면 내릴땐 캐리어를 거의 던지게 된다. 나는 옷이나 물건을 사면 그게 아주 싸구려여도 오래 얌전히 쓰는 편인데 캐리어는 그래서 유학생활동안 자주 바꿀수 밖에 없었다. 5번째 집은 무려 2 pièces. 유학생활 가장 집이였다. 여기 사는 동안 엄마도 한번 다녀가고, 새해에는 친구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벽에 종이를 붙여놓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2년을 살았다. 그리고 떠나게됐다.

이사할때마다 짐을 버려대고 나름 노하우가 생겼다고 해도 맨손으로 하는 이사는 체력의 가장 한계를 겪게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주변으로 집을 찾았다. 물론 방은 하나로 조금 싼곳으로. 그래서 다섯번째 이사. 이곳은 지금까지 가장 작은 곳이였다. 친구도 초대하지 않았고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곳에 사는 동안 비디오를 시작했다. 작업 과정이나 세계가 매력적인게 1번이였지만 종이나 maquette같은 작품에 대한 짐이 생기지 않는다는것도 당시 내가 비디오에 빠질 있었던 주요한 이유였던것 같다. 이곳에서도 2년을 살았다. 다시 살아볼 있을까 싶은 . 아마 수는 있을꺼다. 그래도 이곳에서 많은 작업과 일들이 지나갔으니까.

여섯번째 이사는 Paris로의 이사. Grenoble에서 Dijon으로 갈때도 그랬지만 Dijon에서 Paris 올때도 조금의 미련도 없이 떠났다. 마지막 석사 학위 시험을 보고 이틀뒤부터. 당시 Sy언니의 남편이 많이 도와주셨고, 그분이 지금의 집을 구해주시기도 했다. 꼭대기라고 해도 겨우 4-5층이지만 그런곳에서 작은 창으로 하늘을 빤히 바라보는게 익숙하던 나에게 이곳은 RDC. 그거 하나만 빼면 모든게 마음에 들었다. 물론 월세는 Dijon 2-3.

이후로 3년반, 가장 오랜시간동안 한집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심지어 내년부터는 두집살림을 시작하려고 한다. 충분히 감당해 낼지 아님 결국 하나를 정리하게 될지, 어쩌면 양쪽 버리게 될지. 살아봐야 안다. 살아봐야 한다.


유물
첫번째 집에 살기 시작했을 , 처음 장을 보러가서 사온 물건 중에서 지금까지 계속 같이하고 있는 물건이 두개가 있다. 그냥 있는것이 아니라 여전히 일상에서 아주 자주 사용하는 아이템

1) cafetière italienne à 2 personnes
가장 뜨겁고 진한 커피를 쉽게 만들 있다. 기본스타일의 모양, 가장 작은 사이즈. 쇳덩이이기 때문에 망가질일이 없다. 이사할때 깨질 일도 없고, 전기 스토브이다보니 그을릴일도 없다. 가운데 필터쪽 고무가 낡긴 했다. 내년중에 한국에도 같은걸 하나 사다놓을까 한다.

2) sèche-cheveux

프랑스에서 전자제품을 파는 양대산맥 Fnac Darty. 그중 거리상 가까웠던 Darty 먼저 가보게 됐다. 가장 싼것중에 두번째 것으로 헤어드라이기. 지금까지도 매일같이 쓴다. 대신 어디 갈때는 왠만해서 드라이기가 있거나 그냥 없이 말려도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지고 다니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크고 화려한 전자제품들을 쓰다가 오면 뭔가 작고 초라한 바람을 낸다. 몇일 지나면 그런느낌없이 역할을 해내기만 한다. 내가 가진 많은것들이 그렇다. 나의 échelle 맞는것들